"평창, 국제무대 알려져 그나마 소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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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010년 겨울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두고 갖가지 소문이 난무하고 있지만 평창이 기대 밖의 큰 성과를 거뒀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세계적 홍보대행사 버슨-마스텔러 아시아.태평양 윌리엄 라일런스(44)회장은 "예전에 평창은 국제무대에서 '무명 도시'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잘츠부르크를 이긴 곳이 됐다"며 "베이징(北京)이 '재수(再修)' 끝에 올림픽을 유치한 것처럼 평창도 언젠가는 겨울올림픽을 유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출신인 라일런스 회장은 사내에서 아시아, 그중에서도 한국 사정에 정통한 인물. 게다가 국제 스포츠행사 유치와 홍보 분야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라일런스 회장이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86년 초. "한국으로 가 86년 아시안 게임과 88년 올림픽의 홍보를 담당하라"는 '특명'이 떨어진 것이었다.

"그 당시 한국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거의 없었지요. 그래서 도서관으로 달려가 자료를 찾아 공부했죠.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 관련 자료가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게 기억나네요."

'개인공부'까지 하고 한국에 왔지만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를 '분단국가'에서 멋지게 치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80년대엔 세계 냉전 분위기가 강했기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들은 올림픽에 불참하려 했죠. 자유주의 진영 국가들 가운데도 북한 때문에 안전을 걱정해 참가를 망설였던 나라가 적지 않았고요. 그래서 조직위원회 인사들과 순수한 스포츠 행사, 안전한 국가의 이미지를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했죠. 결국 성공리에 올림픽을 마치고 폐막식을 볼 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여기서 그가 전하는 서울올림픽 뒷얘기 하나. 약물 복용 때문에 육상 남자 1백m 금메달을 박탈당한 벤 존슨은 도핑 테스트 센터에서 시간을 오래 끌었다고 한다.

회견장에 기자들을 모아놓고 있던 라일런스 회장으로선 목이 타는 일. 1시간30분가량을 기다리던 그는 센터로 직접 달려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어디서 감히 세계 챔피언을 독촉하느냐"는 호통만 실컷 들어야 했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 AFP통신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죠. 벤 존슨이 약물을 복용한 사실을 특종으로 알아냈다고요. '그래서 민감하게 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튼 저는 그의 약물복용을 세계에서 두번째로 안 사람이었습니다."

이 밖에도 라일런스 회장에게는 다시 한번 한국을 위해 뛸 기회가 있었다. 대한축구협회 의뢰로 94년부터 시작된 2002년 월드컵 유치 캠페인을 거들었던 것. 이 일을 맡은 그는 '한국에서 열리는 양대 스포츠 행사를 모두 내 손으로 잘 치러내겠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했다.

"처음에 한국 유치를 돕겠다고 하니 외신 기자들이 모두 '어차피 일본에 지게 돼 있다.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한국인들의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일본에 크게 앞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점을 집중 공략했죠."

결과는 알다시피 한.일 공동개최. 라일런스 회장은 당시엔 '일본을 이기는 기적을 이룰 수도 있었는데…'하는 생각에 실망이 컸다고 한다. 그렇다면 월드컵이 지난 지금은? 그는 "월드컵을 계기로 국제사회에서 한국과 일본을 같은 급(級)으로 보는 것 같아 오히려 잘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어느덧 한국과 인연을 맺은 지 17년. 그 사이 한국인 여성과 결혼도 했을 정도로 '한국통'이 된 라일런스 회장은 "그간의 한국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홍보쟁이'의 입장에서 볼 때 아직까지는 '프랑스=예술''일본=첨단기술' 같은 특화된 국가 이미지가 없는 것이 아쉽다. 한국의 급선무는 국가 브랜드를 구축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남궁욱 기자<periodista@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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