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91명 희생된 네팔 지진 1년 트라우마 극복에 꼬박 1년 걸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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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16일 발생한 지진으로 일본 구마모토에서 59명, 남미 에콰도르에서 52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두 나라는 지금 여진에 몸서리치고 있다.

고르카 등 재기 현장 가보니
주민들 몇 달간은 불면증 등 고통
“건물 흔들려” 망상에 공터서 지내
“집단 무기력증 극복이 가장 큰 과제”

네팔이 1년 전 그랬다. 2015년 4월 25일 오전 11시56분. 규모 7.8의 강진이 네팔을 강타했다. 충격을 추스르던 5월 12일 규모 7.3의 2차 지진이 왔다. 두 차례 지진으로 모두 8891명이 숨졌다. 1만여 명이 죽은 1934년 지진 이후 네팔이 겪은 최악의 참사였다.

일본·에콰도르보다 1년 앞서 재난을 겪은 네팔은 대지진을 어떻게 수습하고 있을까. 대지진 1주기를 보름 앞둔 지난 10일 네팔을 찾았다. 네팔 대지진은 국제구호단체 재난기준으로 따지면 전 세계가 대처해야 할 ‘카테고리 3’ 재난이었다. 사망·부상·가옥 붕괴 등 피해를 입은 인구가 800만 명에 이르렀다. 특히 1·2차 진앙지였던 고르카·신두팔초크 주(州)는 산악지대여서 피해가 극심했다. 해발고도가 800m~1300m여서 구호물자가 산꼭대기까지 닿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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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네팔 고르카 가이쿠르마을에서 만난 한 모녀가 지난해 대지진 때 무너진 집 앞에 서 있다. 이들은 국제구호단체가 나눠준 양철 지붕을 무너진 담벼락 위에 얹어서 살고 있다. [사진 월드비전]

수도 카트만두에서 6시간 고속도로를 달린 뒤 비포장길을 차로 3시간 더 가야 도착하는 고르카의 산꼭대기 가이쿠르마을. 400여 명이 사는 이 마을 가옥은 대부분 무너졌다. 산에서 감자·옥수수 농사로 연명하는 이곳 사람들은 주변에 널린 돌과 진흙, 나뭇가지로 집을 지었다. 지진으로 열에 아홉 집이 생계터전을 잃었다. 더 문제였던 건 마을의 의료시설 역할을 한 보건소가 모조리 붕괴된 것이다.

“부상자 치료도 시급했지만 지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다독이는 게 더 힘들었어요.”

지진만큼 무서운 게 여진이다. 일본과 에콰도르도 지진 발생 나흘간 여진이 수백 차례 계속되고 있다. 네팔도 규모 4.0 이상의 지진만 1년 동안 500차례 왔다. 이 마을의 람 랄(40) 보건소장은 “여진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 때문에 땅이나 건물이 흔들리는 환영을 보거나 지진이 온다고 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지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수백 명이 서너 달씩 공터에서 지내기도 했다.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이 보건소 건립에 팔을 걷어붙여 올해 초 산꼭대기 마을에 보건소를 세웠다. 랄 소장은 “덕분에 사람들이 많이 안정됐고 전염병 확산도 막았다”고 말했다.

네팔은 대지진 긴급구호 작업이 끝나자 지진 트라우마 같은 2차 피해를 극복하는데 5~6개월을 할애했다. 제니퍼 맥칸(여) 월드비전네팔 긴급구호본부장은 “복구는커녕 집단 무기력증을 이겨내는 게 가장 큰 과제였다”고 토로했다. 지진 이후 통상 구호·복구에 전념해야 한다고 여기지만 지진 쇼크, 즉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맥칸 본부장은 “지진이 또 와도 대처할 수 있게 교육하고, 이겨낼 수 있다는 의지를 심어주는 캠페인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이는 일본과 에콰도르가 추후 재난복구 과정에서 유념해야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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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 동부 산악지대인 신두팔초크 풀핑콧마을에서 만난 마이야 타파(35·여)네도 큰 딸(12)이 수개월간 불면장애를 겪다 심리치료를 통해 지진 트라우마를 이겨냈다. 타파도 비교적 담담하게 ‘그날’에 대해 이야기했다.

“2층 돌집이었지만 부족함 없는 생활이었죠. 마당에 서 있는데 순간 땅이 흔들리더니 2층 집이 좌우로 왔다갔다 했어요. 무작정 바나나 나무쪽으로 뛰었어요. 조금만 늦었어도 저 돌무더기에 깔려 죽었을 거예요”

대지진은 네팔 75개 주 가운데 중·서부 39개 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신두팔초크에서만 전체 희생자의 3분 1가량인 2945명이 숨졌다. 지금 타파네는 양철 지붕재를 얹은 2평 남짓한 임시거처에서 다섯 식구가 살고 있다. 신을 원망한 적 없느냐는 물음에 타파는 “다섯 식구가 무사한 데 오히려 신께 감사하고 있다”며 두 손을 모았다. 후원 월드비전 02-2078-7000 (www.worldvision.or.kr)

고르카·신두팔초크=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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