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관계도 서로 얻고 잃는 사이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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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해방이후 한미관계 40년사 중에서 이번 전두환 대통령과 「레이건」 미대통령의 만남은 양국의 특기할 상황에서 이루어졌음에 각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우선 종전까지만 해도 한미정상회담은 미국이 한국안보를 재확인하여 주는 것 등으로 미국에 보다는 한국에 일방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확신과 기대 속에 이뤄진데 비하여 이번은 미국의 요구로 우리한국이 잃는 것도 적지 않으리란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또 미국 측의 한국시장개방확대와 금융보험시장 개방압력 등의 문제로 대학가를 중심으로 이에 대한 반대여론과 구호가 적지 않게 일고있는 중에 이뤄졌다는 점도 특기할 사실인 것 같다.
미국도 근래에 와서는 한국을 일방적으로 지원하던 과거와는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국을 대미무역에서 무려 3백70억 달러에 이르는 흑자로 미국을 괴롭히는 일본 비슷이 취급하여 한국의 대미수출을 억제하면서 그들의 대한수출을 증가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미국사회에서 고개를 들고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현상은 70년대까지만 해도 한미간에는 없는 특기할 새로운 상황이다. 아마도 이런 점 때문에 한국민이 모두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결과를 정리한 신문발표문에 깊은 관심을 갖고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된다.
정상회담 직후 각각 발표한 신문발표문의 내용은 대체로 세 가지 영역의 문제를 논의한 것을 정리하고 있다.
첫째 한반도의 안정과 전쟁억지를 위한 미국의 대한방위공약을 재확인한 것으로 신문발표문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북한으로부터의 전쟁도발 억제가 한반도문제해결의 키라는 점에 한미양국이 인식을 같이하고, 전쟁예방을 위한 모든 대응책을 한미양국이 공동으로 더욱 적극 강구하자는 내용이다.
미국의 방위공약 재확인은 한미관계공동선언에 언제나 확인·강조되는 점이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사항은 아니다.
그러나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개최 방해를 목적으로 있을 수 있는 북한의 테러책동에 강력 경고할 필요 때문에 현시점에서 이 점을 재차 확인하는 것은 한국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믿어진다.
그리고 5월부터 남북한간에 재개될 적십자회담·경제회담 등의 성공적 진행을 위해서도 한미간의 확고한 군사적 결속과 미국의 외교적 지원이 아직은 필수적 조건이기 때문에 이번의 다짐은 시의적절한 조치로 평가된다.
그래서 「레이건」 대통령이 이번에 다시 한반도 문제해결의 길은 남북 당사국 회담에 있음을 역설한 점은 국제적으로 논의되고있는 3자 회담을 거부하는 미국입장을 다시 한번 천명한 것으로 한국의 대북한 대화노력에 도움이 될 내용이다.
둘째 양국의 보호무역 경향과 자유무역주의에 입각한 시장개방확대문제에 관한 공동관심의 내용이다.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우려와 자유무역에 대한 신념을 강조하면서도 미국 측이 『한국경제의 지속적 발전이 한반도의 안보와 동북아지역의 안정을 위해서도 긴요하다』는 한국 측의 주장에 동의를 표한 점이 한국을 위해서 퍽 다행한 것 같다.
약 4백억 달러에 이르는 외채문제와 미국의 대한수입억제 조치 등이 현재 한국 내 일부에서 일고있는 반미감정의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에 미국정부가 우리의 특별한 사정을 고려하여 경제협력을 아끼지 않는 것이 한미 양국의 건전한 관계발전을 위해 그전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한반도의 안정뿐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GNP의 6%라는 막중한 방위부담을 안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우고싶다.
셋째 한국정치발전에 대한 내용이 역시 이번 「레이건」 발표에 관심을 끌고있는 부분이 되고 있다. 「레이건」 대통령이 1988년에 있을 평화적 정권교체에 대한 전대통령의 공약에 지지를 천명하면서 2·12총선 등을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괄목할 전진으로 크게 환영한 점이 더 반가운 내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
이 문제는 한국의 국내정치문제이기 때문에 한미정상회담에서 깊이 논의되는데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한국정치발전에 미국이라는 변수가 중요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국민들의 관심은 이 점에 더 집중하였는지도 모르겠다.
더 구체적 내용이 없는 점은 아쉬우나 크게 볼 때 이번 한미정상의 신문발표문 내용은 대체로 한미 양국이 현안문제를 원칙중심으로 재정립하였다고 본다.
구체적 내용은 더 시간을 두고 실무자간에 논의될 것으로 믿어 우리국민은 모두 계속 관심을 갖고 살펴야겠다.
한국도 이제부터는 한미관계에서 과거와는 달리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얻은 것뿐만 아니라 잃은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야할 시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좀더 철저히 깨우쳐야 하겠다.[이호재<고려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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