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사람 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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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며칠 전 신문에 보도된『직장여성 결혼연령은 26세』란 서울 민사지법의 판례를 읽고 성차별의 극복은 아직도 머나 먼 남의 나라 얘기인가 싶어 무척 우울해졌다.
이야기인즉 23세 된 이모양이 교통사고를 당해 피고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자 재판부는 이양이 회사원으로서 받는 봉급은 25세까지 인정하고 26∼55세 까지는 가정주부로서 4천 원을 기준으로 계산하여 8백46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여자의 사람값은 왜 이리도「비지 값」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일할 때도, 다쳤을 때도, 죽어갈 때도 이 사회는 여자의 사람값에 왜 이리도 인색한지 모르겠다. 하기야 여자 값에「에누리」를 해가며 헐하게 매기는 현상은 비단 이 판례뿐이랴. 사회 도·처에서 미혼·기혼·결혼·임신·육아 등등의 구실을 붙여가며 여자에게 품팔이 값을 깎자고 덤비는 것이 바로 부권노동시장의 생태다.
그 기사가 실린 날 한 후배가 찾아와 왜 여자는 결혼하면 손을 털고 일터를 떠나야 하느냐며 핏대를 세웠다. 한창 일할 성숙한 나이에, 그것도 사회가 정해주는 나이「26세」에 주변의 강요에 의해 직장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과연 우리 여성들에게는 이웃과 사회와 인류를 위해 내배운 지식과 정열을 바칠 자유도 자격도 없는 것일까? 공복이 되고픈 젊은 여성들의 불타는 애국심과 헌신은 예외 없이 꼭 한 남성(편)만을 위해 토막 나져야 할까.
여성들의 교육과 의식은 날이 갈수록 높아져 결혼보다 사회 참여 우선주의로 기우는 여성들의 수가 날로 증가한다. 그러나 현실은 약관26세에 등떠밀려 부엌으로 가기 위해 일터를 떠나야 한다.
이제 자율권을 여성의 손에 넘겨줄 때가 되었다. 자로 몸매를 재듯 부권적 규격 틀에. 여자를 끼워 맞춰 나이로 여자 인생의 값을 매기는 유아적인 가부장들의 여성관이 안타깝기만 하다.
유옌 여성보고서엔『여자는 세계 노동인구의 3분의1, 세계노동시간의 3분의2를 차지하나 세계 임금의 10분의1만이 여자 몫』이라 분석했다. 제일 일 많이 하는 여자가 제일 적게 댓 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여자의 가사노동시간을 합치면 세계 창조에 대한 여성의 공헌은 70%로 뛰어 오르고, 남성의 공로는 3O%로 뚝 떨어진다고 여성학자들은 말한다.
부권문명은 여성이라는 숨은「뿌리」가 피워낸「꽃」이다.
뿌리가 아파할 때 꽃은 향기를 거둔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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