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신약 도전] 미 혈액제제 시장 진출 발판 마련…차세대 독감백신·신약 개발 역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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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십자는 꾸준한 연구개발과 글로벌 시장 개척으로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하고 있다. 경기도 용인 녹십자 목암타운 모습.

녹십자가 지난해 ‘연매출 1조원’의 기록을 세웠다. 핵심 사업인 혈액제제와 백신 분야에 역량을 집중한 결과다. 글로벌 시장 진출 속도 역시 빨라지고 있다. 매출 가운데 해외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어섰다.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글로벌 시장 개척 노력이 결실을 맺은 덕택이다. 녹십자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에 주력할 계획이다.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하기 위한 녹십자의 발 빠른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녹십자

녹십자는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혈액분획제제인 면역글로불린 ‘아이비글로불린-에스엔(IVIG-SN)’ 품목 허가를 신청했다. IVIG-SN은 선천성 면역결핍증, 면역성 혈소판 감소증에 사용되는 녹십자의 대표 혈액분획제제 중 하나다. 혈액분획제제의 세계시장 규모는 220억 달러(약 25조5000억원)에 달한다.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11%씩 성장했다. 미국은 세계 시장의 절반을 차지한다. 녹십자는 FDA 허가가 글로벌 사업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인 만큼 전사적인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미국에서 첫 허가를 받으면 ‘글로벌 녹십자’를 향한 첫 단추를 채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혈액제제 분야는 대규모 설비 투자와 고도의 운영 경험이 필수적이다. 일부 다국적 제약사만이 전 세계 공급량의 70%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진입장벽은 높지만 그만큼 부가가치가 크다.

실제 미국 시장 내 면역글로불린의 가격은 국내보다 4배 정도 높게 형성돼 있다. 북미 제약 시장은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무대다. 녹십자는 국내·외에서 오랜 기간 사업을 진행하며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캐나다에 북미 생산 거점

녹십자는 우선 지난해부터 건립 중인 캐나다 혈액분획제제 생산시설을 북미 생산거점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아직까지 캐나다 내에는 면역글로불린을 생산하는 시설이 없다. 공장을 본격적으로 가동하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게 녹십자 측의 설명이다.

녹십자의 캐나다 현지법인(GCBT)은 공장이 있는 퀘벡주의 혈액사업 기관과 면역글로불린 등을 최소 8년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캐나다 혈액제제 공장은 올해 건물 건축이 완료될 예정이다. 늦어도 2019년에는 본격적인 상업용 생산에 들어간다.

혈액제제 원료인 혈장 확보도 순조롭다. GCBT가 캐나다 혈액사업 기관으로부터 일정 물량의 혈장을 공급받기로 했다. 미국 현지법인(GCAM) 역시 혈장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 내 혈액원을 30곳으로 늘려 원료 혈장을 연간 100만 리터 이상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녹십자의 또 다른 주력 분야인 백신 사업 수출 성과도 두드러진다. 2009년 국내 최초로 독감 백신을 개발해 국내 백신 주권 시대를 열었다. 국내 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일찍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린 덕에 해외에서 독감백신 수주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올해 벌써 스타트를 끊었다. 백신 최대 수요처 중 하나인 범미보건기구(PAHO) 남반구 의약품 입찰에서 약 389억원의 독감백신을 수주한 것. 녹십자가 독감백신을 수출한 이래 최대 규모다. 이번 수주 금액을 포함하면 녹십자의 독감백신 해외 누적 수주액은 1억5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해외 시장에 첫 발을 내디딘 지 6년만의 기록이다. 실제 녹십자는 국제기구 입찰 참여자격을 확보한 이후 매년 독감백신 수출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수출 첫해인 2010년 550만 달러 정도였던 독감백신 수출량은 지난해 4800만 달러를 기록했다. 5년 만에 9배 가까이 성장했다. 현재 글로벌 독감백신 시장은 다국적 제약사가 장악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녹십자의 수출 성과는 더욱 의미가 크다.

독감백신 수출 9배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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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십자가 2009년 국내 최초로 개발한 독감백신 ‘지씨플루’.

녹십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차세대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제제별로 백신과 재조합단백질·혈장단백질·단클론항체, 질환별로는 감염성 질환·암·희귀 난치성 질환 연구가 대표적이다. 지난 2012년 세계 두번째로 출시한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는 출시 2년 만에 국내 시장 점유율을 절반 이상 차지했으며, 글로벌 진출을 위한 임상을 준비하고 있다.

독감(인플루엔자) 백신 분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4가 계절 인플루엔자 백신, H5N1 조류 인플루엔자 백신의 제조 및 판매 허가를 받았다. 녹십자는 단가, 3가, 4가 백신을 개발해 다양한 바이러스 대응력을 갖추고 있다.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감염병 대유행에 발 빠른 대처가 가능하다. 녹십자가 글로벌 독감백신 시장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것은 백신 사업 역량을 견고히 쌓았기 때문이다.

녹십자는 다방면의 사업 분석을 토대로 독감백신처럼 경쟁력 있는 백신을 선별해 글로벌 제품으로 키운다는 전략이다. 또 항암 면역치료용 항체 제제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기존에 출시된 헌터라제의 투여 경로를 다양화할 계획이다.

김선영 기자 kim.sun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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