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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이런데…올 법인세 사상 최대 예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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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올해 법인세수가 정부의 목표치(46조원)를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국세청은 지난 5일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국세행정개혁위원회에 “3월 끝난 지난해 실적에 대한 법인세 신고액이 전년보다 늘었다”며 “올해 목표한 법인세수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했다. 법인세 신고 대상(65만2000개) 중 90% 이상을 차지하는 12월 결산법인은 지난해 영업 실적을 토대로 관할 세무서에 법인세 납부액을 3월에 신고한다. 이 때문에 3월 법인세 신고액이 1년 세수 농사의 ‘가늠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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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세수는 2013·2014년 2년 연속 줄었다가 지난해 45조원으로 다시 늘었다. 국세청은 올해도 당초 세입 예산인 46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서대원 국세청 법인납세국장은 “3월 기준으로 보면 법인세수가 지난해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다만 금융업 및 일부 대기업 등 연결납세 방식 법인의 신고가 4월 말까지여서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올 정부 세수 목표치 46조 넘을 듯
허리띠 죈 기업 순익 증가, 국세청은 성실 신고 유도
"누수만 줄여도 잘 걷히는데" 야당, 법인세 인상 주장

경기가 어려운데도 법인세가 잘 걷히는 건 지난해 기업의 영업이익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코스피에 상장된 12월 결산법인 516곳의 전체 매출액은 1639조3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102조2017억원으로 14.2% 늘었다. 장사는 잘 안 됐지만 기업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수익은 되레 올랐다. 여기에 기업 재무제표에는 반영이 안 되지만 법인세에는 영향을 미치는 각종 비용도 크게 준 것으로 국세청은 파악했다. 서대원 국장은 “유가 하락 등으로 기업의 비용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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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대상 비과세·감면이 축소된 것도 법인세수 증가 이유다. 정부는 지난해 세법 개정을 통해 올해부터 연구개발(R&D) 설비 및 에너지 절약 시설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대기업 기준 3%에서 1%로 낮추는 등 세제 혜택을 줄였다. 이를 통해 법인세수가 연간 2400억원 늘 것으로 기획재정부는 추산했다.

국세청의 역할도 크다. 국세청은 지난달 법인세 신고를 앞두고 법인 11만 곳에 전산분석자료를 사전 제공했다. 법인카드 사적 사용, 특수관계인 허위 인건비와 같은 내용이다. 이런 식의 거짓 신고를 하지 말라는 ‘경고’다. A세무법인에서 일하는 김지훈(38)씨는 “국세청의 성실 신고 유도로 법인세 관련 허위 신고는 엄두도 못 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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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법인세 납부 시부터 적용된 기업소득환류세제도 법인세수를 늘릴 것으로 보인다. 기업이 순이익의 80% 이상을 투자, 배당, 임금 인상 등에 쓰지 않으면 기준 미달 금액의 10%를 법인세로 추가 징수하는 제도다. 다만 지난해 기업들이 기업소득환류세제 적용을 피하기 위해 배당을 많이 한 것으로 나타나 이 제도에 따른 법인세수 증가액이 많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지난해 상장 기업이 주주에게 지급한 배당금 총액은 18조398억원으로 2014년보다 3조9231억원 늘었다. 윤영석 국세청 법인세 과장은 “법인세 신고가 모두 끝나는 4월 이후 기업소득환류세제에 따른 법인세 증가 규모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법인세수가 늘었다는 건 경기 부진에 허덕이는 기업의 부담이 그만큼 증가했다는 의미도 된다. 이런 가운데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은 또다시 법인세 인상 논란에 불을 붙였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법인세 최고 세율을 현행 22%에서 25%로 올리겠다는 총선 공약을 내세웠다. 재계는 반발했다. 송원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정부의 세제 혜택 축소로 이미 기업의 세부담은 늘고 있다”며 “주요국이 법인세 인하 경쟁을 벌이는 추세와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형수 조세재정연구원장은 “경기가 좋아서 세금이 잘 걷히는 게 아니다”며 “법인세 인상보다는 걷어야 하는 세금을 누수 없이 징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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