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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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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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짧은 머리 듬성듬성 빗 대기도 미안한데
거울 속 마주한 이 남김없이 하얗구나
(短髮蕭蕭不滿梳 鏡中相對白無餘)
- 목은 이색(1328~1396), ‘머리를 빗으며(梳髮)’ 중에서

우리의 마음은 결코 늙지 않는다
600년 시차를 뛰어넘은 삶의 지혜

데이터에 담긴 사람의 ‘마음을 캐는 일(mining minds)’을 업으로 하면서 얻게 된 장점 한 가지와 단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장점은 타인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해 상대를 배려하게 된다는 것이고, 단점은 우리네 삶의 단계를 대리 체험하며 의도치 않게 조로(早老)한다는 것입니다. 고려 말 삼은(三隱) 중 힌 명인 이색이 나이 듦에 대해 짧게 쓴 시입니다. 위 구절이 마음에 남은 이유는 그 다음 구절 때문이었습니다.

'소년시절 모습은 모두 사라졌어도(少年風采都消盡)/ 호기는 아직 남은 것을 누가 알까?(豪氣誰知常未除).’ 최근 수년간 수십억 건의 데이터 속에서 중년이라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40대에서 50대로 인식됩니다. 하지만 시니어들이 남긴 글 속에서는 70대도 흔하게 중년과 연관됩니다. 노년 역시 60대로 가장 많이 표현되지만, 나이 드신 분들의 글을 보면 80대와의 연관성이 두드러집니다.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됐다는 한탄에 공감하는 세상이 지금에서야 온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은 마음속에서 결코 늙지 않는다는 고래의 진리가 600년보다도 큰 시차를 넘어 일관되고 있음이 여실히 증명됩니다. 무한히 변주되고 다시 일치되는 삶의 지혜를 새로이 찾기보다 다시 발견하는 총명이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하고 소망하고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