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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가엔 대자보 대신 ‘대나무숲’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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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고민부터 사회 고발까지

대자보가 아닌 대나무숲이다. 대자보 대신 SNS 페이스북 채널인 ‘대나무숲’이 대학생들의 소통 수단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큰 종이에 써서 벽면에 붙이는 대자보는 오랫동안 대학생들이 메시지를 전달하고 공유하는 기능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대자보의 기능을 페이스북 ‘대나무숲’이 대신하고 있다. 서울대·연세대 등 120여 개 대학에서 운영되는 대나무숲은 바깥에서는 쉽게 하기 힘든 이야기를 익명으로 올리는 대학생들의 소통 창구다. 대나무숲이란 이름은 옛날이야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유래했다.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대나무숲에서 혼자 비밀 이야기를 하고 답답한 마음을 푸는데, 이 이야기가 결국 바람을 타고 전국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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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학생들의 SNS 페이스북 ‘대나무숲’ 메인 페이지. [페이스북 캡처]

흔히 페이스북의 인기도를 ‘좋아요’ 개수로 판단한다. 2016년 3월 기준으로 서울대 대나무숲은 ‘좋아요’ 7만8234개, 연세대와 고려대는 각각 4만873개와 3만2375개를 기록하고 있다. 대나무숲에 하루 평균 올라오는 글만 해도 평균 40~50건에 이른다.

이곳에 올라오는 글은 주로 연애, 학점, 취업, 진로에 대한 고민이다. 학교별 특징도 있다. 서울대는 ‘문학의 숲’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감성적이고 정제된 글이 많이 올라온다. 지난해에는 자체적으로 ‘대숲문학상’을 개최할 만큼 학생들의 관심도 높다. 연세대 대나무숲은 하루 평균 100~150건의 글이 올라오는 활발한 페이지다. 올라오는 글이 너무 많아서 운영진이 페이스북에 공유할 글들을 따로 선별해 싣는다. 대나무숲에 공유되지 못한 글들을 따로 모아 놓은 ‘안타깝숲’이라는 별도의 페이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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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학생들의 SNS 페이스북 ‘대나무숲’ 메인 페이지. [페이스북 캡처]

대나무숲은 대학 내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일들을 고발하는 기능도 한다. 최근 한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벌어진 ‘오물 막걸리 투척’ 사건도 대나무숲을 통해 공론화돼 해당 학교와 학생회 측의 공식 사과를 이끌어냈다. 숙명여대에선 학교 측이 자동 경비 시스템을 도입해서 학내 경비 노동자를 해고하려고 한다는 사실이 대나무숲을 통해 알려지면서 학생들의 반발로 결국 계획이 철회되기도 했다.

한편 익명의 제보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탓에 사실 확인이 제대로 안 된 글들이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한양대 대나무 숲에는 ‘학과 행사 중 남학생이 여학생의 뺨을 때렸다’는 제보가 올라와 가해자 신상이 공개되기도 했지만 뺨을 만진 행동이 과장돼 제보된 것으로 밝혀졌다. 고려대 대나무숲을 운영하는 A씨는 “사이트 운영자들이 근거 없는 비방이나 사생활 침해가 우려되는 글들은 자체적으로 필터링한다”면서도 “운영 시스템과 인력 구성상 완벽하게 필터링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대나무숲은 대자보보다 학생들이 접근하기 훨씬 편하다”며 “접근이 쉬워진 대신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많아질 수 있으니 이 부분에 대한 학생 스스로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민관 기자, 김성현 인턴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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