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神' 두번 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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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제37기 왕위전 도전자 결정국
[제3보 (28~38)]
白.李 世 乭 7단 | 黑.曺 薰 鉉 9단

曺9단의 흑▲는 온건한 수다. '전신(戰神)'이란 별명을 지닌 曺9단이 언제 상대의 예봉을 피한 적이 있던가. 그러나 오늘은 상대가 상대인 만큼 움직임이 조심스럽다.

만약 일전을 꾀하고자 했다면 '참고도1'처럼 흑1로 붙인 뒤 3으로 뻗었을 것이다. 백4엔 5로 쌍립을 해두고 하회를 기다린다. 백이 6으로 달려 사는 데 주력한다면 7로 눌러 흑이 좋다. 흑의 두터움이 백의 실리를 압도한다고 曺9단은 말한다.

('참고도1'의 백6으로 달리는 수는 정석책에 나오는 수다. 놓쳐서는 안될 근거의 요소라는 부연 설명도 있다. 따라서 유식한 바둑일수록 6으로 달리는 수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그 수가 나쁘다. 상황이 달라진 탓이다. 정석은 외운 뒤 잊어버리라고 하는 연유가 여기 있다).

이세돌7단은 물어볼 것도 없이 '참고도2' 백6으로 머리를 내밀 것이다. 흑이 7로 젖히면 역시 강타자답게 8로 맞받아 추호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이때 어디로 두는 것이 옳을까. A로 막고 한 템포 늦출 수도 있고 B로 끊어 곧장 난전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어려운 대목이었다."(조훈현9단)

曺9단은 실전에서 이 전투를 피했다. 이 전투가 불리하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한번 참아둔 것이다. 이쪽에서 마음만 먹는다면 싸울 기회는 어차피 수도 없이 있을 것이므로 다음 기회를 보기로 한 것이다. 37도 상당히 인내한 수다.

曺9단은 C까지 가고 싶었다. C에 두면 백은 D로 나와야 하는데 그 모습이 실전의 38보다 궁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曺9단은 E의 반격이 껄끄러워 한번 더 참았다. '전신'의 두번째 인내다. 바둑은 참으로 상대적인 것이다. 그 점 역시 인생과 참 닮았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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