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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해 10대 소녀 문근영 '댄서의 순정' 열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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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 문근영은 올해 고3. 지난 겨울방학을 이용해 "댄서의 순정"을 찍었다. 고전문학을 좋아해 국문과에 가고 싶지만 배우가 좋아 연기를 전공하고도 싶다. 또 역사를 공부하고 싶다. 강정현 기자

문근영(18)은 요즘 애 같지 않다. 달걀 같이 둥근 얼굴, 초롱초롱한 눈망울, 또박또박 단정한 말씨 등 고전 미인에 가깝다. 이효리 같은 섹스 어필은 찾으려야 찾을 수 없다. 그런데도 10대들은 열광한다. 제발 지금 그 모습에 멈춰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문근영은 무공해다. 인공, 치장과 거리가 멀다. 그 순수한 이미지에 어른들도 푹 빠진다. 그런데, 이 소녀, 취향도 독특하다. 고3 수험생인 그가 가장 선호하는 과목은 국어. 조선 문인 정철의 '속미인곡'을 좋아한다. 조선 명기(名妓) 황진이의 시조도 즐겨 읽는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과거로 날아간 것 같다.

"고전문학은 애절해요. 같은 사랑을 얘기해도 깊이가 느껴져요. 멀리 떨어진 연인에게 쉽게 마음을 전할 수 없었던 시대, 그 그리움도 더하지 않았겠어요. e-메일이나 메신저로 속을 내보이는 요즘과 분위기가 다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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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은 꿈도 색다르다. 자기만의 책방을 소망한다. 소설.에세이를 탐독하는데 그간 읽은 작품을 모은 공간을 꾸며, 남들에게 들려주고 싶단다. 대입 수험에 올인하는 요즘이지만 최근 읽은 것으론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낙하하는 저녁' '반짝반짝 빛나는'이 좋았다고. 꼬맹이 대상 동화 구연도 희망 직종이다.

그녀의 더 큰 꿈은 도서관을 짓는 것. 알고 보니 어머니를 위한 공간이다. 광주 공립도서관에서 20여년 간 사서로 일해온 엄마에게 주고 싶은 선물이다.

"한국의 도서관이 외국에 비해 형편없다는 말을 엄마에게 자주 들었어요. 집마다 장식용 책을 내놓으면 도서관 몇 개는 너끈히 만들 텐데. 배우란 일이 화려해서 오히려 소박한 꿈을 꾸는 것 같아요."

그러나….

문근영은 욕심쟁이다. 특히 일(연기)에선 그렇다. 28일 개봉하는 '댄서의 순정'(감독 박영훈)에서 카멜레온으로 나온다. 옌볜 사투리를 능청맞게 구사하고, 중국어로 노래도 부르고, 흥겨운 라틴댄스로 플로어를 주름잡고 등등. 세상물정 어두운 옌볜 소녀에서 "여보""자기"를 간지럽게 부르는 귀여운 처녀로 성장한다.

그가 맡은 캐릭터는 한국에서 위장결혼을 하고, 스포츠 댄스를 배워 성공을 하려는 19세 옌볜 아가씨. 뽀얀 우윳빛 얼굴에 덕지덕지 화장한 모습을 깜짝 서비스하고, 나쁜 아저씨들에게 몰매를 맞는 모습도 보여준다. 지난해 관객 315만 명을 기록한 '어린 신부'에 이어 또다시 화사한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꿈에 그리던 운명적 사랑에도 도달한다. 문근영을 내세운 100% 기획상품 같은 느낌도 없지 않지만 그만큼 그의 존재는 영화를 든든하게 받쳐준다.

"'장화, 홍련'에서 영화의 분위기를 익히고 '어린 신부'에서 마음으로 하는 연기를 배웠다면 '댄서의 순정'에선 머리로 하는 연기를 공부했어요. 예전에 순간의 감정을 표현했다면 이번에는 작품 전체, 캐릭터들의 관계까지 생각했습니다."

문근영은 발톱이 세 개나 빠지는 호된 훈련 끝에 삼바.룸바.차차차 등 라틴댄스를 익혔다. 영화 막바지에선 그의 놀라운 춤 실력이 공개된다.

"춤을 배우고 나니 자신감이 많이 붙었어요. 여러 근육을 쓰니 몸도 부드러워졌고요. 음악이 나오면 절로 몸을 흔드는 버릇도 붙었죠."

문근영은 경계인. 소녀와 성인 사이, 학교와 연기 사이, 일상과 스타 사이, 고민이 많다. 언론에 보도된 숱한 선행도 어깨를 무겁게 한다. "그냥 휴지가 떨어져 주웠는데 사람들은 예쁜 아이가 휴지까지 다 줍네"라는 식의 반응이 부담스러워 하루에도 몇 번씩 배우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래도 이내 승부근성이 발동했다. 노래도, 연기도 모두 잘하는 조승우 오빠를 볼 때마다 솔직히 질투를 느낀다는 것. 기회가 되면 작은 배역이라도 뮤지컬 무대에 서고 싶다고 했다. '댄서의 순정'에서 나오는 운명적 사랑을 믿느냐고 묻자 "예""예"를 힘주어 대답했다.

문근영의 이상형은 웃는 모습이 예쁜 남자. 보는 것만으로 힘이 될 것 같아서다. 예쁜 웃음은 긍정적 사고의 결과라는 해석도 달았다. 카메라 앞에선 문근영. 화난 표정 주문해도 피식 미소만 번진다. 그의 환한 웃음에 오늘도 많은 사람이 빠져들고 있다.

박정호 기자<jhlogos@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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