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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불신 바람 탄 ‘불량후보 찍어내기’ 절반의 성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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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3호 22면

16대 총선을 앞둔 2000년 4월 3일 서울 정동 이벤트홀에서 총선시민연대가 낙선 대상자를 발표하면서 레드 카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4·13 총선의 낙선 대상으로 시민단체가 지목한 86인의 후보 가운데 실제로 낙선한 후보는 무려 59인에 이르렀다. 이 숫자는 10일 후로 다가온 이번 4·13 총선 이야기가 아니다. 2000년 4월 13일에 실시된 16대 총선을 앞두고, 지금으로부터 꼭 16년 전인 2000년 4월 3일에 총선시민연대가 발표한 낙선운동 대상자의 선거 성적표다.


2000년 낙선운동 대상자는 그 두어 달 전에 발표된 낙천운동 대상자의 연장선이었다. 각 당의 총선 공천이 논의되던 2000년 1월 24일 총선시민연대는 공천에 반대하는 67명의 인사를 1차로 발표했고, 2월 2일에 다시 2차 공천반대 인사 명단을 발표했다. 이어 4월 3일 낙천운동 대상자 중에서 실제로 출마한 64명에다 22명을 추가해 총 86명의 후보를 최종 낙선운동 대상자로 발표한 것이다.


전통적 자유민주주의는 각 정파가 자신의 후보나 정책을 내세워 당선운동을 전개한 후 국민이 투표로 선택하는 방식이다. 정당이 아닌 시민단체가 100인을 훨씬 넘는 정치권 인사를 낙천 혹은 낙선시키겠다고 나선 2000년 낙선운동은 유권자 개개인의 올바른 판단을 전제로 하는 전통적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관찰하기 힘든 현상이다. 낙선운동은 대체로 공(功) 대신에 과(過)로 그 대상자를 선정하기 때문에 현역 정치인보다 신진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다 준다.


2000년 낙선운동에 대한 평가는 당시에도 논란거리였다. 정파적 이해관계를 지닌 특정 세력이 부당한 불법 행위로 민의를 왜곡했다면서 마오쩌둥이 주도한 문화대혁명의 촉매 역할을 했던 홍위병에 비유한 비난전이 이어지기도 했었다. 그런 정권유착설?음모론의 주장과 실제 한계에도 불구하고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이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 전략적 측면은 여러 가지를 언급할 수 있다.


 

2012년 12월 4일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에서 박근혜 후보가 “후보 단일화를 주장하면서 토론회에 나오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이정희 후보는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정치권 불신 풍조 때문에 가능첫째,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매우 컸다. 총선시민연대 관계자의 표현대로 “대중의 불만이 풍선같이 차 있었을 때 단지 바늘을 갖다 대는 정도”가 큰 파급효과를 낳았다. 공기가 꽉 차지 않은 풍선과 달리, 꽉 찬 풍선은 터뜨리기가 훨씬 쉽기 때문이다. 정치 신인보다 현역 의원을 대상으로 전개할 수밖에 없는 낙선운동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팽배할 때 효과적이다.


둘째, 운동 목표의 초점을 특정 후보의 당선이 아닌 특정 후보의 낙선에 맞췄다. 입찰이나 인사에서는 누구를 붙여주기보다 떨어뜨리기가 훨씬 쉽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다섯 후보가 경쟁하고 있는 선거에서 각자의 조건이 동일하다면 당선 확률은 모두 20%다.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는 행위는 20%의 당선 가능성을 100%로 만드는, 즉 80%포인트를 올려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이에 비해 특정 후보를 낙선시키는 행위는 20%의 당선 가능성을 0%로 바꾸는, 즉 20%포인트만 내리면 성사된다. 특히, 공보다 과를 더 중시 여기는 한국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셋째, 공천 부적격자와 낙선 대상자를 객관적인 기준으로 선정했다는 여론을 조성했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는 부패, 선거법 위반, 헌정파괴·반인권, 지역감정 선동, 의정활동 성실성, 개혁적 태도, 선거관리위원회 (선관위) 등록사항의 진위 등으로 낙선 대상자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세부 기준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그리고 여러 기준을 어떻게 합산하느냐에 따라 대상자 명단은 바뀔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상자 선정이 자의적이라는 반박을 피할 수 없었다.


넷째, 낙선운동의 추진세력은 자신이 ‘공정한 심판’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웠다. 특정 정파와 친밀한 관계라고 비판받을까봐 표면상으론 낙선 대상자 명단에 모든 주요 정당의 후보들을 적지 않게 포함시켰고, 또 낙선 대상자를 발표할 때 레드카드 퍼포먼스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진행돼 오늘날까지도 이를 놓고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특히 낙선운동을 주도했던 인사 중 상당수가 이후 국회나 정부 고위직에 진출하면서 낙선운동의 정파성에 대한 의혹을 부풀린 측면이 있다.


정파성 담기면 오히려 역효과낙선운동을 추진하는 자가 정파적인 행위자로 인식되면 그 낙선운동은 의도와 다르게 전개되기도 한다.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인데, 섣불리 나섰다가 오히려 친구에게 피해를 주고 경쟁 상대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 누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게 되면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와 정반대의 선택을 취하는 경향 때문이다. 예컨대 2012년 12월 4일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로 돌아가 보자.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에게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를 주장하면서 토론회에 나오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이 후보는 “박근혜 후보를 떨어트리기 위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후보는 선거일이 임박한 12월 17일 후보직을 사퇴했고, 이틀 뒤 실시된 선거에서 박 후보가 당선됐다. 그러자, 박 후보를 낙선시키려 했던 이 후보의 그 간 언행을 놓고 기권하려 했던 박 후보 지지자들까지 결집시켜 오히려 박 후보를 당선시킨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과 평가가 나왔다. 통합진보당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갖고 있던 유권자 가운데 일부는 새누리당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후보가 박 후보에게 심한 모멸감을 주자 오히려 박 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거부감이 줄어들었던 것이다.


다섯째, 여론이 때로는 법규보다 더 우선시되는 한국 사회의 특성, 이른바 ‘국민감정법’을 파고들었다. 당시 “아무리 목적이 좋다 해도 탈법행위까지 용인받을 수 있는 무한권력이 시민단체에 주어진 것은 아니다”며 합법적인 노선을 견지한 다른 시민단체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와 달리 총선시민연대는 합법성에 지고의 가치를 두지 않았다. 운동 효과를 높이려는 차원에서 때로는 법규를 준수했고, 때로는 불복종했다. 낙선 대상자 실명을 거론해서는 안 된다는 선관위의 잇단 경고가 나오자 낙선운동 현장에서는 이름을 한 획씩 다르게 표기하는 방법으로 피해가기도 했다.


주도인사들 정치진출로 의미 퇴색총선시민연대가 출범할 무렵 낙천·낙선운동은 불법이라는 지적이 일자 총선시민연대 측은 관련 법률 조항이 위헌이라고 반박하면서 ‘시민불복종’이라는 논거를 대기 위해 다수의 시민단체 참여를 급하게 추진했다. 총선시민연대가 낙천·낙선 대상자 발표에 앞서 거대한 조직화를 추진하게 된 계기는 바로 불법 논란 때문이었다. 그러나 2000년 총선이 끝난 이후 낙선운동 지도부 일부는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 받았고, 2001년 헌법재판소는 낙선운동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조항을 합헌으로 결정했다.


이후 전개된 낙선운동은 그 효과가 줄어들었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의 낙선 성공률은 60% 전후로 평가됐고,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성공률을 평가할 본격적인 낙선운동을 찾아 볼 수 없었으며,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낙선 성공률이 약 30% 정도로 떨어졌다. 낙선운동의 성공 조건인 추진세력의 탈(脫)정파적 이미지가 약화하면서 그에 따라 거대 연대도 이뤄지지 못했다. 시민단체 지도자가 정치 진영에 가담해 활동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많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단체를 순수하고 탈정파적인 집단으로, 또 시민운동가를 정파와 무관한 사회지도자로 보는 인식도 함께 줄었다. 다른 한편으로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은 그에 대한 정치권의 대응이 진화하면서 쇠퇴한 측면도 있다.


누구를 좋아하게 만들기보다 누구를 싫어하게 만들기가 더 쉽다. 이간질에 익숙한 자들은 더욱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특히 한쪽이 이기고 다른 쪽은 지는 정치 분야에서는 호감보다 증오를 만드는 일에 더욱 치중한다. 그런 증오 만들기는 주로 ‘친구의 적’ 혹은 ‘적의 친구’를 적대시하는 경향을 이용하여 이뤄진다. ‘○○심판론’은 낙선 대상을 지목하는 것이지 당선 대상을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21일 미 공화당 대선 예비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연설이 예정된 워싱턴 베리존센터 밖에서 반(反) 트럼프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AP=뉴시스]

지금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예비후보에 대한 낙선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증오 만들기로 인기를 얻어왔던 트럼프 후보에 대해 반(反)트럼프라는 새로운 증오가 형성된 역설적인 상황이다. 양자구도라면 낙선운동과 당선운동이 비슷한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나, 트럼프가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기 때문에 미국 대통령 선거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다.


누가 자신을 욕하면 방어가 쉽지 않다. 한 줄의 비판은 바로 확산되지만, 여러 문단의 해명은 잘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론재판에서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고 해서 무죄추정의 원칙이 작동하지 않는다. 적국의 싼 미사일 하나가 공격해오면 비싼 격추 미사일을 여러 개 쏘아 올려야 방어에 겨우 성공할 수 있다. 이처럼 전쟁뿐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방어는 공격보다 그 성공률이 낮다.


불을 끄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맞불 놓기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표현처럼, 낙선운동의 대상이 된 후보의 효과적 대응은 상대 경쟁 후보에 대한 낙선운동이다. 이는 일종의 물타기다. 즉 비판 받지 않은 상대를 비판해 유권자에게 양비(兩非)론적 선호를 갖게 하는 것이 목표다. 물론 잘못 계산된 맞불은 대화재로 이어져 공멸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다자대결에서의 어부지리(漁父之利)가 바로 그런 예다.


누구를 낙선시키는 전략과 누구를 당선시키는 전략은 다르다. 선두주자를 낙선시킨다고 해서 다음 주자가 꼭 당선되는 것은 아니다. 강력한 도전자를 낙선시켰는데 꼴찌가 당선될 수도 있으며, 또 꼴찌를 낙선시켰더니 선두주자가 떨어지기도 한다. 싫다고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후보와 좋다고 하는 사람이 가장 적은 후보는 대체로 일치하지 않는다.


여·야 모두 4·13 총선을 앞두고 심각한 내부 갈등을 드러내면서 이번 선거는 다자 대결의 모습을 띠고 있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16년 전의 4·13 총선 당시와 견주어 볼 때 결코 적지 않다는 점에서 낙선 전략이 효과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있다. 다자구도 속에서 낙선 전략과 당선 전략의 절묘한 조합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재한한림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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