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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억 찍은 전셋값…싱숭생숭 ‘서울의 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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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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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부동산 중개업소 앞을 지나던 시민이 가격표를 살펴보고 있다. 이날 국민은행이 발표한 주택가격 동향조사에 따르면 이달 서울 아파트의 평균 전셋값은 4억244만원으로 집계됐다. [뉴시스]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전용 59㎡형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고 있는 직장인 이모(40)씨. 오는 5월 전세계약 만기를 앞두고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에 들러 아파트 전세 시세를 알아보다 깜짝 놀랐다. 호가(부르는 값)가 4억9000만원으로 2년 전보다 1억4000만원 뛰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전세 물건이 거의 없었다. 이씨는 “최근 몇 년 새 전셋값이 그렇게 많이 올랐는데 올 들어서도 상승세가 여전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집값 꺾이며 전세수요 더 늘어
25개월 만에 평균 1억원 껑충

봄 이사철을 맞은 주택시장에 전셋값 상승세가 거침없다. 집값 상승세가 꺾인 반면 전셋값은 계속 오르고 있다. 29일 국민은행에 따르면 이날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이 4억244만원으로 집계됐다. 올 들어 3개월 새 2400여만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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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이 조사를 시작한 2011년 6월 이후 처음으로 4억원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 전셋값을 기록했다. 2014년 2월(3억25만원) 3억원을 넘어선 뒤 25개월 만에 1억원이 더 뛰었다. 한강 이남 지역이 전셋값 상승세를 주도했다. 서초·강남·송파구를 포함한 11개 구의 아파트 평균 전셋값이 4억6735만원으로 강북지역 14개 구 평균(3억2619만원)보다 1억2000만원가량 더 높다. 수도권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2억8785만원으로 3억원대를 눈앞에 두고 있고 전국적으로는 평균 2억2647만원으로 나타났다.

전셋값 고공행진은 전셋집 공급 부족이 악화되기 때문이다. 올 들어 집값이 보합세로 돌아서며 매매가격 전망이 불확실해지자 매수에서 전세로 돌아서는 주택수요자가 늘고 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올 들어 이달까지 서울 아파트값이 0.33% 오르는 데 그쳤고 전국적으로는 0.18% 내렸다. 3

월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1만654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만9144건)의 절반 정도로 크게 줄었다. 2006~2015년 1~3월 연평균 거래량(1만7551건)보다 적다. 국민은행 임희열 가치평가부 팀장은 “주택담보대출 규제 등으로 아파트값 하락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자 집을 사지 않고 전세로 눌러앉는 수요도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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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물건이 빠르게 사라지면서 전셋집 품귀 현상은 심화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아파트 임대차계약에서 차지하는 월세 비율이 올 들어 이달까지 37.9%로 2년 전보다 13.7%포인트 높아졌다. 세입자를 구하는 집 10가구 가운데 전세가 8가구에서 6가구로 줄어든 셈이다.

전세의 월세 전환이 늘면서 월세가 떨어져도 은행금리보다 여전히 높기 때문에 집주인들은 월세를 선호한다. 서울에서 아파트 전세를 월세로 돌릴 때 적용되는 전·월세 전환이율이 5%대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박사공인 박준 사장은 “전세보증금을 은행에 맡겨봐야 이자가 연 1~2%밖에 안 돼 주인 입장에선 전세에 매력이 없다”며 “1년 전보다 월세 물건이 20% 이상 증가한 것 같다”고 전했다.

그나마 올 들어 전셋값 상승세가 다소 주춤해져서 다행스럽다. 올 들어 이달까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0.99% 올랐다. 1~3월 상승률로 2013년 이후 가장 낮다. 국민은행이 매달 조사하는 아파트 전셋값 전망지수도 이달 들어 전국에서 104.3으로 2개월 연속 떨어졌다. 기준치인 100이 넘어 전셋값이 앞으로도 오를 것으로 보면서도 상승 폭은 줄어들 것이란 예상이다. 장기 전셋값 상승에 따른 피로감이 크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을 제외하고 2009년부터 8년째 오름세를 타고 있다. 최근 2년간 14% 올랐다.

전세 재계약이 늘고 전셋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역이나 다세대·연립주택으로 눈을 돌리는 수요자가 늘고 있다. 살던 집에서 계속 전세를 살면 아무래도 전셋값 상승 폭이 시세보다 다소나마 적다. 서울에서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인구도 증가 추세다. 서울에서 연립주택 평균 전셋값은 1억7000만원 정도로 아파트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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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셋값 불안을 안심할 수 없다. 올해 새 아파트 입주물량이 넉넉하지 못하고 재건축·재개발 이주 수요가 많다. 부동산114는 서울 개포·둔촌동, 경기도 과천 등 이주가 임박한 주택이 서울 2만2000여 가구를 비롯해 수도권에서 총 3만여 가구로 보고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난은 불씨가 꺼지지 않은 채 불안 요인이 산재해 있기 때문에 마음을 놓기 어렵다”고 말했다.

안장원·황의영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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