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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우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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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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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어느 날 백신을 맞은 새끼 토끼가 죽었다. 어미 토끼의 통곡에 온 숲이 들썩였다. 곧 백신에 말오줌을 섞어 유통시킨 오소리가 체포됐다. 깜냥이 안 되는 오소리가 백신 사업에 끼어들 수 있었던 비밀은 뇌물이었다. 오소리는 여우, 여우는 들개, 들개는 늑대, 늑대는 숲의 왕 호랑이로 뇌물 사슬이 이어졌다.

호랑이는 수완이 뛰어났다. 숲의 육식동물은 매달 초식동물이 바치는 피를 마시고 살았다. 호랑이는 숲 속 생태계를 예리하게 감독했다. 초식동물을 살찌워 혈세를 잘 거두며 늑대와 여우를 감시해야 했다. 자신의 통치권과 먹거리를 넘보지 못하도록 관리했다. 육식동물은 호랑이 옆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했다. 욕심은 금물. 호랑이에게 잡아 먹힐 수 있어서다. 초식동물의 사는 법은 두 가지다. 시험을 통과해 관직에 나가면 육식동물과 혈세를 취할 수 있었다. 아니면 죽지 않을 정도만 피를 뽑아가도록 호랑이와 늑대의 자비를 기대할 뿐이었다.

일찍이 걸출한 양 한 마리가 인정(仁政)·왕도(王道) 철학을 만들었다. 호랑이가 극찬했다. 완고한 당나귀도 나왔다. 초식동물은 육식동물을 굶겨 죽일 수 있다고 선동했다. 당나귀는 곧 쫓겨났다.

평화가 계속됐다. 숲은 번성했고 매달 피를 납부하는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장관이었다. 늑대와 여우의 욕심은 커져 갔다. 호랑이 가족도 지지 않았다. 일반 피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제한 피만 마셨다. 남은 피는 강으로, 바다로 버려졌다.

동물 숫자가 늘면서 먹거리는 줄고 경쟁은 치열해졌다. 집값은 폭등했고 공기 오염도 악화됐다. 인자한 호랑이는 민생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치안부대를 파견하고 선전을 강화했다. 숲은 다시 안정을 찾았다.

백신 사건은 이 즈음 터졌다. 늙은 물고기는 몇 년 전 멜라민 분유 사건을 떠올렸다. 호랑이는 표범특공대를 파견했다. 범인을 체포했다. 오소리 일파까지 일망타진했다. 토끼는 만족했다. 백신 관리 책임을 맡은 붉은 여우가 분유를 감독했던 장본인이라는 폭로가 나왔다. 호랑이는 붉은 여우도 투옥했다. 호랑이는 여우를 끝으로 사건 종결을 선언했다. 여론은 가라앉았다. 호랑이 만세 합창이 다시 이어졌다.”

최근 중국을 뒤흔든 산둥(山東)성 불법 백신 유통 사건 이후 중국 SNS에 등장한 ‘백신 우화’의 줄거리다. 사건 주범인 지방 병원의 약제과 과장 팡(龐)은 의사인 딸과 5년간 1000억원대 백신을 상온에서 유통시켰다. 변질된 백신은 주로 농촌에서 접종됐다. 피해 규모는 드러나지 않았다. 팡 모녀는 지난해 4월 체포됐다. 쉬쉬하던 사건은 최근에야 인터넷 매체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다.

지난주 베이징 푸찬(婦産)의원에서 만난 임산부는 “무서워 아이도 못 낳겠다”며 분노했다. 중국 라오바이싱(老百姓·일반 백성)은 더 이상 토끼가 아니다. 호랑이 간담을 서늘하게 할 우화를 만들고 퍼뜨릴 도구도 갖게 됐다. 권력이 민심을 더욱 두려워하게 된 이유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