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후인물」과 가깝게 보이기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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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번 국회의원 선거유세에서 야당후보들간에 벌인 배후인물과의 「가깝게 보이기」 경쟁은 우리 정치판의 실상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신한민주당후보는 말할 것도 없고 상당수의 민한당과 군소정당·무소속후보들까지 자신이 김영삼·김대중씨의 영향권아래 있으며 두 김씨와 자신이 특수한 관계임을 강조하는데 안간힘을 썼다.
신민당후보들은 과거 자신의 경력이 어쨌느냐는 아예 뒷전에 제쳐놓고 고위공무원이나 여권출신가들까지도 두 김씨를 들먹여 자기가 진짜 야당이며 선명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많은 민한당 후보들은 몸은 민한당에 있지만 마음은 김씨들 편에 있으며 선거가 끝나면 두 야당이 통합하는데 앞장설 것을 다짐하는 것으로 신당바람에 맞섰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여당후보까지 야당 측의 두 김씨 거론에 『안다면 내가 더 잘 아는 처지』 라는 발언을 했다.
민한당과 신한민주당이 원래 구 신민당이란 한 뿌리에서 나왔고 단일보수야당이 면면히 이어져온 우리 야당사의 흐름을 생각할 때 두 야당후보들이 벌이는 일종의 적서논쟁이 꼭 비난받을 일만은 아니다.
오히려 두 야당이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경쟁을 벌여 야당다용을 키워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고 이해해주면 그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야당정치인이 평소 자기발로 서고 자기의 주장을 통해 표를 얻으려는 노력보다는 지도자의 이름 석자에 매달려 한꺼번에 성가를 올리겠다는 생각에 쉽게 치우치는데 있다.
그 결과 무수한 사실 왜곡과 저차원의 다툼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벌어져 코미디의 소재를 제공했다.
호남의 어느 지역에서는 민한·신민당의 두 후보가 서로『김대중씨는 우리 당을 지지 한다』며 단상공방을 벌였다. 민한당 후보는 최근 미국서 김씨와 함께 찍은 사진을 내보이며 『김씨는 특정정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신민당후보는 김씨와 일지와의 회견문을 번역· 배포하면서 『틀림없는 신민당지지』 라고 우겼다.
또 다른 지역에서는 신민당 후보가 유치송 총재를 매도한데 흥분한 나머지 민한당 후보는 기상천외의 논리를 동원했다. 즉 『김대중씨는 상대하기 거북한 김영삼· 이철승씨가 있는 신민당보다는 「말랑말랑」한 유 총재가 있는 민한당을 올라탈 것』이라는 것이다.
영남의 여러 지역에서는 민한·신민당후보가 모두 김영삼씨와 같이 찍은 사진으로 팸플릿을 채웠으며 『김영삼씨를 모시고…』 라는 표현 경쟁이 치열했다.
민한당의 당직자나 공천을 따기 위해 유 총재에게 비굴할 정도로 매달렸던 인사들까지도 노골적으로 『민한당을 과도정당이며 두 김씨의 그늘로 들어가야 한다』 고 말하는 것을 보고는 염량세태란 말이 새삼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상을 단순히 야당가의 촌극으로만 보아 넘길 수 없는데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정부·여당과 국민 편에서도 이런 정치현실을 냉철히 재조명해야할 필요성이 제기됐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정법 상 명백히 정치활동을 할 수 없는 두 김씨가 왜 정치의 장에서 후보자와 청중에게 그런 정치력을 발휘하는 것일까. 그런 「힘」 과「영향력」을 언제까지 정치권외로 눈감아 버릴 수 있는 것일까. 두 김씨가 이번 선거에 끼친 영향력을 어떻게 계측할 것이며 있는 것을 계속 없는 것으로 덮어둘 것인가.
이런 의문들이 이번 선거과정에서 증폭되고 국민의 가슴에 좀더 현실감 있게 다가온 게 사실이라면 정부·여당은 뭔가 새로운 회답을 강구해야만 하지 않을까 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전육 정치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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