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해진 후보들, 2등 당선 자청도|막바지 열기…유세장 진풍경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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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치1번지」로 불리는 서울종로-중구 유세장인 옛 서울고교 자리에는 6일 유세시작 1시간전인 낮 12시쯤부터 인파가 몰리기 시작, 광화문일대를 메웠다.
유세장의 스탠드나 연단주변은 물론 땅이 질지 않은 운동장의 곳곳에는 일찌감치 청중들이 자리를 잡았고 일부청중들은 점심식사가 끝나면 돌아가야 한다며 입구 쪽에 몰려있어 더욱 혼잡을 빚었다.
○…민정당의 이종찬 후보지지당원들은 상오11시30분쯤부터 연단 양쪽 스탠드와 서쪽스탠드·운동장 한복판·뒤편 등 6∼7군데 로열박스에 만2천여 명이 일찌감치 자리잡아 조직력을 과시….
이들은 5일까지의 유세에서 이 후보 연설 때 『우우…』하는 야유소리 때문에 중단되는 일이 잦자 이에 대비하기 위해 평소의 3배쯤은 될 듯한 지지자들을 동원.
부녀당원들은 대부분 스탠드를 차지했고 젊은 부녀자 층과 남자들은 운동장에 서있었는데 모두 이 후보의 대형사진이든 팸플릿 2장씩을 들고있었다.
이들은 현장에서 우유·빵 등의 급식을 받기도 했는데 마지막 연사인 이 후보가 연설할 때 모두 팸플릿을 흔들며 『이종찬』 을 외쳤고 특히 『우우』 하는 야유가 떠질 때마다 『야』 하는 함성으로 맞서 「바람」 을 재우는 몫을 했다.
○…연설시작 1시간이 넘도록 인파가 계속 몰려들어 교문부근은 뒷사람의 가슴에 떠밀려 입장할 만큼 큰 혼잡.
이 와중에도 하오1시40분쯤 경찰 백차1대가 교문 안으로 들어가느라 청중 속에 파묻혀 『부르릉』 거리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의 원성과 빈축을 샀다.
유세장에 들어선 청중들은 예상외로 많은 관중에 놀란 듯 『와』하는 탄성을 터뜨렸고 일부 청중들은 일행과『대통령선거 때보다 많은 것 같다』거나 『5만 명이다』 『10만 명이다』 고 입씨름을 하기도 했다.
○…두 번째로 등단한 민권당의 한상필 후보는 여성후보임을 강조하며 『세계의 정치1번지에서 여성후보를 당선시켜 종로-중구주민의 문화수준을 과시하자』 고 목청을 돋우었으나 청중들은 비교적 냉담한 반응.
한 후보는 또 연설을 끝낸 후 정중하게 머리 숙여 절을 하며 오른손을 높이 들어 『한상필을 국회로 보냅시다』하고 구호를 외쳐 박수를 받았으나 오른쪽·왼쪽으로 돌아가며 인사와 구호를 반복하자 연단에서 내려갈 줄 알고 박수를 친 관중들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세 번째로 연설한 신민주당 이상윤 후보는 삭발한 채 한복 수의를 입고 나와 시선을 끈 후 『보도기관이 내가 수의를 입고 삭발한 것만 보도하고 그 이유나 정견은 보도하지 않는다』며 일갈.
이 후보는 특히 연설 막바지에 『존경하는 신한민주당의 이민우 총재님을 1등 당선시켜주고 나를 2등 당선시켜달라』 고 말해 폭소와 함께 많은 박수를 받았다.
○…네 번째로 연단에 선 신민당 이민우 후보는 날씨얘기로 시작, 『아무리 현정권이 엄동설한에 선거를 하려해도 하늘이 무심치 않아 날씨가 이렇게 따뜻하지 않느냐』고 말해 열띤 박수를 받았다.
이 후보는 비교적 차분하게 청중을 이끌었으나 광주사태·대통령직선제·김대중씨 귀국문제 등에서는 톤을 높였고 시종일관 민정당과 정부를 공격.
특히 이 후보는 대학생을 「민족의 꽃」 「겨레의 일꾼」등으로 표현하며 「지하도에서 전경대원을 시켜 대학생가방이나 뒤지는 정부」 「전경대원이 지켜줘야 하는 정당」등의 표현을 빌어 현정부를 비판하기도….
연설도중 10여 차례의 박수를 받을 때마다 연단 바로 밑 지지학생들이 『이민우』를 계속 외쳐대자 이 후보는 손을 들어 『조용히 하세요』라며 스스로 이들을 제지했다.
이 후보가 연설 후 2백여 명의 지지학생들과 연설장 밖으로 빠져나가며 손을 흔들자 주위의 청중들이 모두 박수와 함성으로 답례하며 절반 가량의 청중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다음 순서로 연단에 선 오제도 후보가 약5분 가량 연설을 시작하지 못할 정도였다.
○…오제도 후보는 연단주위에 1백여 명이 팸플릿을 들고 성원을 보냈으나 5일의 총무국교 때보다 열기가 다소 식은 듯. 오 후보는 약간 쉰 듯한 목소리로 『김일성이 가장 무서워하는 오제도』 라며 과거의 반공검사 관록을 과시하고는 『망하는 꼴을 말리다 못해 탈당했다』 고 무소속 출마이유를 설명.
오 후보는 또 야당세력의 통합에 앞장서겠다며 시종 평안도사투리로 목청을 높였다.
○…다섯 번째 연사인 정대철 후보는 『4년간 정치방학중 모교에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왔다』 고 말하고 『이곳에서 8선인 선친 정일형 박사를 3년 전 여의었다』 『어머니 이태영 박사가 김대중씨의 선거유세를 위해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고 가세를 과시하기도….
정 후보는 특히 『아녀자도 몇천억원을 먹는데 당수하면서 겨우 1백80억원을 꿀꺽했다고 그렇게 모욕을 당했다면 정내혁씨도 민정당을 안 찍을 것』이라고 청중들을 웃겼다.
정 후보는 연설 끝 부분에서『야당은 힘을 합쳐 여당 쪽으로 포문을 돌리자』 고 말했으나 곧바로 『이민우 총재가 일정시대 고등계형사를 지냈다는 말이 있는데 진상을 밝히라』고 거듭 주장하다가 청중들의 야유를 받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등단한 민정당 이종찬 후보는 유일한 여당후보답게 『지역구 일꾼』임을 강조하며 『여당1명, 야당1명』 씩 동반 당선시켜줄 것을 호소.
이 후보가 등단하자 지지당원 2천여 명이 팸플릿을 높이 치켜들고 환호한 반면 남아있던 1만여 명의 청중들은 비교적 조용히 듣거나 가끔 『우』 하는 야유로 맞서기도 했다.
전날 충무국민학교의 청중야유로 자주 연설을 중단해야했던 것을 의식했음인지 이날 3배쯤 늘어난 이 후보지지당원들은 청중들이 『우』 하는 야유를 시작하면 즉시 『와』하는 함성과 함께 팸플릿을 흔들어댔다.
이 후보는 특히 정대철 후보가 바로 앞 연설에서 부모인 정일형·이태영 박사 얘기를 한 것에 자극 받은 듯 『자기 힘으로 국회의원 될 생각은 않고 부모나 다른 사람 이름을 팔아 되려고 하는데 여기가 무슨 친아들 찾아주는 미아보호소냐, 아니면 친자확인 소송하는 가정법원이냐』고 반격.
○…이날 유세장에서 신문을 팔던 김모군(16)은 연설을 마친 모 당 후보의 뒤를 따라 떼를 지어 유세장을 빠져나가는 인파 속에서 신문3백30부를 놓쳐 짓밟히는 바람에 엄청난 손해를 봤다고 울상.
김 군은 그 후보를 뒤따라가며 측근들에게 보상을 요구하다 돈을 받지 못하자 하오3시30분쯤 유세장으로 되돌아와 연단 앞으로 뛰어나가며 『내 신문 값 내놓으라』 고 고함을 지르다 경찰에 붙잡혀 한때 「보호」를 받기도.
○…6일 서울종로-중구 유세장에서 석유풍로 1개를 놓고 라면을 끓여 팔던 김모여인 (39)은 인파에 휩쓸려 전 재산을 박살내고도 억울해 하기보다는 오히려 흐뭇한 표정.
이민우 후보가 하오 3시쯤 연설을 마치고 퇴장할 때 환호하는 청중들이 밀려 풍로와 라면박스를 짓밟으며 박살냈던 것. 김 여인은 군중들이 밀려들자 『다친다』 『석유풍로다』 라고 외치며 수습하러 했으나 역부족으로 「전 재산」이 산산조각 나자 이를 아예 포기하고 퇴장하는 이 후보에게 박수를 보내기도.
○…6일 서울 하월곡1동 숭인국교에서 열린 서울성북구 마지막 유세장에는 보사부의 각 국-과장 및 직원들과 국립의료원 등 산하단체의 직원들이 총 동원돼 장관인 김정례 후보 (민정) 의 연설에 『옳소』를 연발하며 마구 박수를 쳐대 눈길을 끌었다.
이날 유세에서 이철 후보(신민) 는 『국민의 돈을 거둬 운영하고있는 공영방송이 여당의 선거운동만 하고 심지어 코미디물까지 동원, 야당을 공격하고 있으니 시청료를 내지 말자』 고 해 청중들의 열띤 박수를 받기도.
○…대전중구의 마지막 합동연설회가 열린 6일 충남고교에서는 일부 후보 운동원들이 교실에서 부녀자들에게 현금을 건네주는 모습을 보여 주목.
1만5천여 명의 청중이 모인 이 합동연설회는 그 동안 네 번의 연설회 중 가장 많은 청중수를 기록했는데 충남고교 2층 교실에서는 어느 정당후보운동원이 5∼6명의 부녀자에게 현금 2천원씩을 주면서 지지를 부탁, 청중의 상당수가 일당을 받고 동원된 박수부대임을 입증.
돈을 받은 박수부대 부녀자들은 『유세장까지의 왕복택시비 1천2백원을 빼면 별로 남는 게 없다』고 푸념.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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