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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증권 전광판 어찌하오리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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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한국 증권업계에서 첫 도입한 대신증권의 시세전광판.[사진 중앙포토]

한국 증권업계 1호 주식시세 전광판을 어찌할 것인가. 대신증권이 올 연말께 서울 명동 본사 이전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현재 여의도 본사 영업점 내에 있는 시세 전광판을 그대로 가져갈지 결정하지 못해서다. 대신증권의 시세 전광판은 주식 시세를 보여주는 단순한 전광판 이상이다. 대신증권 창업주인 고(故) 양재봉 회장이 지난 1979년 도입한 업계 최초의 시세 전광판이다.

이전까지는 증권사 영업점 직원이 칠판에 분필로 기업 주가시세를 기록했다. 당시 한국거래소에서는 일정 시간에 한 번씩 전 증권사 지점과 연결되어 있는 스피커를 통해 주가를 고시했다. 공시가 되면 증권사 직원은 일일이 기업 주가를 손으로 수정하고, 투자자는 가격을 보고 주식 주문을 냈다. 수작업으로 이뤄졌던 당시에는 시세 전광판 등장이 매우 혁신적이었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센터장은 “시세 전광판은 거래소와 전산을 연결해 당시 상장됐던 100여 개의 기업 주가를 자동으로 고시했기 때문에 투자자는 주식 시세를 단 1초라도 빨리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신증권의 도입 후 다른 증권사들도 앞다퉈 시세 전광판을 설치했다. 업계에서는 전광판 도입으로 주식 거래량이 늘어나 증시 활성화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인터넷의 대중화와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다. 현재 온라인을 통한 주식거래는 전체 거래의 80%가 넘는다. 특히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모바일 기기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모바일 주식거래가 늘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코스피 시장에서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거래량은 전체 거래량의 27.3%, 코스닥 시장에서는 30.1%를 차지했다.

이렇다 보니 증권사들이 하나씩 시세 전광판을 없앴고 서울에선 대신증권만 남았다. 지방에서는 신한금융투자가 제주도와 강원도 등 5개 지점에서 시세 전광판을 운영하고 있다. 전광판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소식에 대신증권 영업점을 찾는 고객들은 매우 아쉬워하고 있다. 매일 30~40명의 60~70대 고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60대 한 고객은 “지금은 별 의미 없어졌지만 과거에는 시세전광판이 기업 정보가 부족한 투자자들이 투자 정보와 의견을 나누는 장소였다”며 “그래도 우리에겐 의미가 남다르다”라고 말했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전광판 운영에 들어가는 고정비용에 비해 효용 가치가 적어 없애는 게 맞다”면서도 “하지만 첫 전광판이라는 상징성이 있고, 마케팅에도 일부 도움이 되기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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