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1~2잔도 걸리게, 음주운전 기준 강화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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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회식 자리에서 소주 1~2잔을 마시고 자가용을 운전해 귀가하다가 음주 단속에 적발되면 통상 현재의 기준으로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 정도를 마셔도 처벌받게 될지 모른다. 경찰이 도로교통법상 처벌 대상이 되는 음주운전의 기준을 현행 혈중알코올농도 0.05%에서 0.03%로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서다. 현재의 0.05% 단속 기준이 생긴 건 1962년 1월 도로교통법 제정 때로, 실제 변경 시 54년 만의 개정이 된다.

혈중알코올농도 0.05 → 0.03% 방안
경찰청, 국민 여론 조사해 결정 계획

경찰청은 22일 “먼저 일반 국민 1000명(운전자 700명, 비운전자 300명)을 대상으로 ‘대국민 인식 조사’를 실시한 뒤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해 법 개정을 추진할지, 현행 기준을 유지할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사 결과는 이르면 5월에 나온다.

개인별로 차이가 있지만 통상 혈중알코올농도 0.05%는 소주나 맥주 2~3잔 정도, 0.03%는 1~2잔 정도를 마셨을 때 측정되는 수치다. 설문에는 음주 단속기준 강화 방안 외에 ▶음주운전자의 처벌 수준 ▶음주로 면허 취소된 자에 대한 면허 재취득 요건 ▶상습 음주운전자 교육 등과 관련해 의견을 묻는 내용이 포함된다.

경찰이 여론조사까지 실시한 건 음주운전 사고의 폐해가 크다고 판단해서다. 음주운전 사망자 수는 2011년 733명에서 지난해 583명으로 줄긴 했다. 하지만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2.6%로 여전히 높다.

경찰은 단속 기준을 강화하면 음주운전 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도 2002년 도로교통법을 개정해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0.05%에서 0.03%로 강화한 이후 큰 효과를 봤다고 한다. 2000년 1276명이었던 음주운전 사고 사망자 수가 2010년 287명으로 크게 감소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강화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2012년 대표 발의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그것이지만 여전히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고 있다. 일본·스웨덴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가 0.05%를 단속 기준으로 삼고 있는 점, 단속 기준 강화보다는 지속적인 단속·교육을 통해 운전자들을 계도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반대에 부딪혀서다. 프랑스·독일 등은 우리와 같은 0.05%다.

전문가들은 국민의 의견을 물어 개정 방향을 결정한다는 취지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다. 교통사고 전문인 한문철 변호사는 “음주운전 사고를 줄인다는 측면에서 찬성한다”며 “다만 음주운전을 해도 벌금형으로 처벌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처벌 수위 강화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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