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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인형이 돼 버린 원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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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박재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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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의 그날 밤은 바람이 유난히 사나웠다. 1.6㎡ 크기의 연립주택 베란다엔 여섯 살 남자 아이와 아홉 살의 여자 아이가 갇혀 있었다. 창틀 사이로 스며든 칼바람이 원영이 남매의 어린 살결에 날을 세웠다. 추위에 온몸을 떨던 원영이는 누나 품 속을 찾았다. 요강에선 비릿한 냄새가 냉기를 헤치며 올라왔다. 원영이가 용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남매는 저녁부터 벌을 서고 있었다.

“누나 추워. 엄마 보고 싶어.” 원영이의 울음이 목구멍을 갉으며 새어 나왔다. “조용히 해. 새엄마 들어….” 남매는 실밥이 터진 내복차림이었다.

“똑바로 서 있지 못해.” 바람의 괴성을 뚫은 외마디가 차가운 공기를 떨게 했다.

얼마 뒤 남매는 기진맥진해 방으로 들어갔다. 구름이 무겁게 내려앉은 밤하늘이 창문 틈으로 보였다. 원영이는 눈을 깜박이며 엄마 별을 찾으려 했다. 바람은 거세졌고, 울음은 끝을 알 수 없었다.

1년 전 아동센터에서 보낸 시간들이 꿈 속으로 찾아왔다.

2013년 말 한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남매는 동네에서 놀고 있었다. “춥지 않아? 옷이 이게 뭐야? 집이 어디야?”

남매는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센터라는 곳에 갔다. 직원들이 준 음식들을 바닥까지 핥았다. 새엄마가 자는 동안 고양이 걸음으로 나온 남매의 센터생활은 3개월 가까이 이어졌다. 그리고 두 달간의 안식. 처음으로 맛본 가정이었다. 센터 소장의 집에서 낯선 첫 경험은 행복이었다. 털은 다 빠지고, 눈은 퀭한 괴물처럼 생긴 동물이 나타나면서 남매는 잠에서 깼다.

아빠를 잡은 손은 새엄마에게 건네졌다. 한번씩 보던 엄마와의 연락은 끊겼다.

“사랑하는 엄마에게. 엄마 사랑해요. 그리고 아프지 말고 잘 지내세요. 원영이가 많이 보고 싶어해요. 저도 보고 싶고요. 새엄마가 집에 들어오는 대신 방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밥은커녕 김밥만 줘요.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는 잘 지내고 있으니까요. 사랑해요.”

엄마에게 쓴 누나의 편지는 허공으로 날아갔다.

꿈 꿔서는 안 될 꿈을 꾼 것인가. 새엄마는 점점 무서워졌다.

“미친 것들이 어디 가서 무슨 말을 한 거야.” 집에 찾아왔던 센터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향한 저주가 남매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원영이는 어둠 속으로 빨려들었다.

2015년 11월. 원영이는 베란다 대신 욕실에 갇혔다.

속옷 차림으로 들어가 몇 시간이고 앉아 있어야 했다. 배고픔과 추위 속에 몸은 굳어갔다. “똑 딱” 소리와 함께 욕실 불이 켜지고 아빠가 들어왔다. “잘못했다”고 빌었지만 이내 불은 꺼졌다. 그리고 새엄마의 폭력이 이어졌다. 미끄러운 바닥에 넘어지면서 이마가 찢어졌다.

두 달 뒤 원영이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속은 울렁거리고 머리의 통증은 계속됐다. 누나마저 없었다. 새엄마가 뿌린 락스가 지난겨울의 추위만큼 살 속을 파고 들었다. 그리고 다시 물세례와 함께 1L의 락스가 어린 몸에 부어졌다. 정신은 점점 희미해졌고, 원영이는 엄마와 별을 세는 미몽에 빠졌다. 그러고는 더 이상 눈을 뜰 수 없었다.

새엄마와 아빠는 원영이를 이불에 둘둘 말아 다용도실 세탁기 옆에 놓았다. 열흘 뒤 원영이는 야산의 후미진 곳에 던져졌다.

1m12.5㎝의 키에 15.3㎏으로 측정된 원영이 몸엔 지방이 없었다. 위에선 음식물이 나오지 않았다. 부검의는 영양실조라고 했다. 머리 부위에선 외부 충격에 의한 것으로 의심되는 피고임 현상이 나타났다. 이마 부위의 피부 조직은 딱딱해져 있었다. 락스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2009년 9월 태어나 채 네 살도 안 된 2013년부터 3년간 학대에 시달리던 원영이는 그렇게 소금 인형처럼 욕실에서 녹아버렸다. 경찰은 “피해 아동은 공개하기 어려운 험한 일을 너무도 많이 겪은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뭘 하고 있었던 것일까. 지금부터라도 뭘 할 수 있을까. 파란 하늘엔 일찍 저버린 또 하나의 꽃잎이 흩날렸다.

박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