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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그윽한 매화·녹차 향에 취하고, 담백한 벚굴·참게 맛에 반하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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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구례·하동·광양 봄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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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 섬진강변은 앞다퉈 피는 꽃으로 난리가 벌어진다. 경남 하동의 차밭에서 만개한 매화 꽃을 마주했다.

섬진강 물길을 따라 봄을 찾아 떠났다. 전남 구례에서는 노란 솜사탕 같은 산수유가 맞아줬고, 경남 하동에서는 푸른 보리 일렁이는 들판을 마주했고, 강 건너 전남 광양에서는 매화 향에 흠뻑 취했다. 섬진강의 봄은 화려했고 싱그러웠고 향긋했다.


산수유꽃 화사한 구례의 봄


전남 구례 계천리 현천마을에서는 아담한 저수지와 어우러진 산수유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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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는 국내 최고의 산수유 산지다. 전국에서 생산되는 산수유의 70%가 구례에서 난다. 구례에서도 산동면이 생산량의 90%를 차지한다. 산동면 위안리의 상위·하위·반곡마을과 계천리의 계척·현천마을이 산수유 재배지로 유명하다. 이 산촌은 매년 봄이면 상춘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2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 피는 산수유꽃 때문이다. 지난 8일 상위마을에 들었다. 이날 오전 구례에는 봄비가 내렸다.

봄비를 머금은 산수유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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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리는 견두산(775m)과 지리산(1915m) 자락 사이에 위치한 산골마을이다. 산 안쪽부터 차례로 상위·하위·반곡마을이 옹기종기 자리하고 있다. 위안리는 물이 많은 동네다. 노고단(1507m)에서 시작된 당골계곡 물줄기가 만복대와 성삼재 사이 골짜기를 지나 위안리로 흘러든다. 계곡물은 구례읍을 지나 섬진강과 합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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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상위마을에서는 이끼 낀 돌담과 노란 산수유가 어우러진 풍경을 볼 수 있다.

당골계곡 맨 꼭대기에 위치한 상위마을은 이끼 낀 돌담과 노란 산수유꽃이 대비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비까지 내려 색이 더 선명했다. 산수유는 산동면 주민의 고단한 삶이 담긴 나무다. 산자락 깊숙이 터를 잡은 사람들은 계단식 밭을 만들고 산수유나무를 심었다. 나무에서 수확한 빨간 열매를 팔아서 먹고 살았다.

“10월 산수유 수확철에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입으로, 손으로 산수유 씨를 발라냈어요. 입술과 손이 온통 산수유 물이 들어 까맣게 변하고 부르텄죠.” 구례군 문화관광해설사 임세웅(49)씨가 설명했다.

산수유가 피어난 구례 반곡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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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곡마을은 계곡 주변으로 데크로드를 설치해 산책길을 냈다. 산수유꽃은 한 봉오리 안에 작은 꽃 20여 개가 들어 있었다. 작은 꽃잎이 펼쳐지고 그 안에 숨어있던 솜털 같은 암술과 수술이 고개를 내밀었다. 산수유꽃은 노란 털실 뭉치 같았다. 견두산 자락에 위치한 현천마을은 저수지에 비친 산수유 풍경이 어여뻤다.

“다른 산수유 마을은 오전에 사진 찍는 것이 좋은데, 현천마을은 오후가 나아요. 잔잔한 저수지 표면에 산수유가 반사되는 모습이 아름다워요.” 30년 동안 구례 곳곳의 사진을 찍어온 구례군 홍보실 김인호(54) 주무관이 넌지시 귀띔했다 19일부터 27일까지 산동면 일대에서 산수유꽃축제(sansuyu.gurye.go.kr)가 열린다. 산수유로 만든 차·막걸리·떡 등을 맛볼 수 있다. 구례군 축제추진위원회 061-780-2726~7.


푸른 들판에서 움트는 하동의 봄


19번 국도변에 들어선 녹차밭 뒤로 섬진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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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읍을 지나 하동 화개장터로 가는 길, 드디어 너른 섬진강을 마주했다. 2014년 11월 화재로 영업을 중단했던 화개장터는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지난해 11월 다시 문을 열었다. 점포의 면적과 디자인을 통일해 어지러웠던 난전도 정리했다. 화개장터는 조선시대 때 전국 5대 장으로 꼽혔던 곳으로 남도에서 가장 큰 장이었다. 화개장터 관광안내소의 남점이(61) 해설사는 “화개장에 지금 115개 점포가 있는데 한창때는 지금보다 다섯 배나 많았다”고 말했다. 화개장에는 갓 채취한 고로쇠 수액과 취나물·냉이·달래 등 산나물이 널려 있었다.

매화나무와 평사리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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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사리 들판에서는 푸른 보리밭을 보고 봄을 알아챘다. 맨땅과 파란 보리밭이 어우러진 평사리 들판은 널따란 조각보 같았다. 맨땅은 맨땅대로 싱그러웠고 보리밭은 보리밭대로 풋풋했다. 평사리 최참판댁에서 만난 문화해설사 김경연(63)씨가 “옛날에는 평사리 들판을 ‘무디미 들판’이라고 불렀다. 무디미는 경상도 방언으로 ‘아주 못쓴다’는 뜻이다”고 소개했다. 원래 평사리 들판은 쓸모 없는 땅이었다. 섬진강이 1년에 대여섯 번 넘쳤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섬진강을 따라 신작로가 나면서 평사리 들판에도 벼와 보리를 심었다고 한다.

하동 최참판댁에서 바라본 평사리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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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은 녹차의 고장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녹차를 재배한 장소가 하동에 있다. 차 시배지로 알려진 쌍계사 주변은 물론이고 강둑 밭뙈기에도 차나무가 흔했다. 섬진강과 바투 붙은 녹차밭은 곳곳에 매화나무가 있어 아름다웠다. 햇차는 곡우(4월 20일) 즈음에 수확한다. 그러나 차나무에는 이미 참새 혀처럼 작고 여린 새싹이 벌써 돋아나 있었다.

재첩국·재첩회무침· 재첩전· 참게장이 한 상에 오르는 해성식당의 모듬정식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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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에서는 봄을 입으로도 느낄 수 있다. 봄과 함께 참게도 올라오기 때문이다. 참게는 민물에서 사는 게로 다리에 털이 덥수룩하게 난 것이 특징이다. 겨울에는 모래 바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고 날이 풀리면 물가로 기어 나온다.

“봄이 오면 동네 친구들이랑 섬진강에 가서 참게를 잡고 놀았죠. 강변에 있는 돌 밑에 참게가 바글바글했어요.” 참게탕을 전문으로 하는 은성식당 김미숙(55) 사장이 말했다. 참게·호박·팽이버섯·미나리를 넣고 들깨가루·소금·된장·고춧가루로 간을 한 참게탕은 국물이 얼큰하고 깊은 맛이 났다.


매화 향기 가득한 광양의 봄


살이 통통하게 오른 섬진강 벚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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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과 광양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이웃동네다. 광양의 봄 전령은 매화와 벚굴이다. 광양 망덕포구에서 싱싱한 벚굴을 먹을 수 있었다. 벚굴은 이름도 많다. 벚꽃 필 때 먹는다 해서 벚굴, 강에서 난다 해서 강굴, 호랑이처럼 크다 해서 범굴이라고도 불렀다. 벚굴은 음력 1월 1일부터 4월 중순까지 먹을 수 있다. 4월 중순이 넘어가면 독성을 띤다. 망덕포구에서 벚굴을 돈을 받고 판 건 10년 전쯤부터다. 이전에는 회를 먹으면 서비스로 벚굴을 줬단다.

망덕리 토박이 강철(31)씨는 “20년 전만 해도 강변 바위에서도 벚굴이 나왔다”며 “지금은 수심 17m 가까이 잠수해야 벚굴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벚굴은 바다에서 나는 굴보다 확연히 컸다. 큰놈은 껍데기 지름이 30㎝가 훌쩍 넘고 무게는 2㎏에 달했다. 살짝 익힌 굴에 묵은 김치와 어슷하게 썬 마늘대를 올려 먹었다. 벚굴은 바다에서 나는 굴보다 덜 짜고 덜 비렸다. 굴 내장까지 통째로 갈아 넣은 죽이 별미였다.

광양 청매실농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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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압면 청매실농원에는 진즉에 봄이 내려와 있었다. 청매실농원의 매화는 이달 초 꽃망울을 틔웠다. 지난 10일 찾았을 때는 약 40%가 개화한 상태였다. 20㏊(6만 평)에 달하는 너른 땅에 10만 그루가 넘는 매화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진 청매실농원은 농장이자 정원이다. 이달 중순부터 말까지 청매실농원은 흰 구름처럼 피어난 매화로 일대 장관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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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양 청매실농원의 홍쌍리 여사가 항아리에서 숙성된 매실을 꺼내보였다.

 매화는 어여쁜 자태에 반하고 그윽한 향에 취하는 꽃이다. 산수유가 향이 없는 반면에 매화는 향이 진하다. 달콤하고 산뜻한 매화 향에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다. 청매실농원의 주인은 1997년 농림수산부로부터 전통식품 명인으로 지정된 홍쌍리(74)씨다.

“농원을 꾸미는데 법정스님이 많이 조언해줬지. 가장 좋아하는 곳은 영화 ‘취화선’을 찍었던 초가여. 임권택 감독이 직접 내려왔더라고. 누가 그랬대, 여 매화가 대한민국 최고라고. 감독님이 농원에서 영화 찍겠다 해서 내가 집을 지어준기라.”

18~27일 청매실농원 일대에서 광양매화축제(gwangyang.go.kr/gymaehwa)가 열린다. 청매실차·매실장아찌 등 청매실농원에서 수확한 매실로 만든 식품을 저렴하게 판매한다. 광양매화축제위원회 061-797-2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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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섬진강을 따라 구례·하동·광양이 늘어서 있다. 서울시청에서 구례 산동면까지 자동차로 약 3시간 30분 걸린다. 산동면에서 지리산 온천단지가 가깝다. 모텔·리조트 등 다양한 숙박시설과 식당이 모여 있다. 구례군 관광과 061-782-2014. 구례부터 하동까지는 19번 국도를 타고 이동하면 된다. 화개장터 근처의 은성식당(055-884-5550)이 참게탕 전문식당이다. 참게탕 소(2인) 3만5000원. 4월부터 섬진강에서 재첩을 수확한다. 하동군청 근처의 재첩특화마을에 재첩 전문 식당 5곳이 모여있다. 해성식당(055-883-6635)에서 모듬 정식을 시키면 재첩국·재첩회·참게장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다. 2인 이상 주문 가능하고 1인 1만5000원이다. 하동군이 추천하는 숙박시설은 최참판댁 바로 옆의 한옥체험관이다. 1박(2명 기준) 3만원부터. 하동군청 문화관광실 055-880-2384. 광양 망덕포구에 벚굴 식당이 많다. 망덕 배알도횟집에서는 벚굴 5~6㎏을 4만원에 판매한다. 택배 주문도 가능하다. 배송료 5000원. 굴죽 1인 8000원. 광양시청 관광과 061-797-2731.

글=홍지연 기자 jhong@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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