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일왕은 백제 후손’ 밝힌 일본 고대사 연구 1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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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와 일본 왕실의 혈연관계 등 한·일 고대사 연구에 평생을 바친 ‘일본 고대사 연구의 1인자’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사진) 교토대 명예교수가 13일 별세했다. 89세. 1927년 효고(兵庫)현에서 태어난 우에다 교수는 태평양전쟁 중 학도병으로 동원됐다. 도쿄 조선소에서 공습으로 친구를 잃은 뒤 ‘천황제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 교토 한 신사의 신직(神職, 제사나 사무 등을 담당하는 신사 책임자)을 맡게 된 것을 계기로 일본 국학원대학에서 천황제의 성립 과정 등 고대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우에다 마사아키 교토대 명예교수

고인은 일본의 건국 신화가 한국 단군신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역사는 사실을 정확히 기술해야 하고 이념에 바탕을 둬선 안 된다”며 일본 교과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싣는 것도 반대했다. 그는 또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을 지칭하던 ‘귀화인’이란 표현이 ‘일본 중심적’이라고 지적하고, ‘도래(渡來)인’이란 표현을 정착시키는데 기여했다.

백제와 일본 왕실의 혈연을 연구하는 등 왜곡된 한·일 고대 교류사의 진실도 파헤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1년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속일본기에 ‘간무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다’라고 적혀 있어 한국과 깊은 인연을 느낀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는 1965년 그가 연구한 결과였다. 이 때문에 일본 우익으로부터 “매국노는 교토대를 떠나라”는 등의 협박 편지를 받기도 했다.

우에다 교수는 에도(江戶)시대 조선통신사와 일본 민중들이 함께 어울리며 우호관계를 쌓은 데 대해서도 주목했다. 조선통신사 연구를 통해 일본의 편협한 내셔널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1950년 교토대를 졸업한 뒤 71년 교토대 교양부 교수가 됐고 91~97년엔 오사카여자대 학장을 지냈다. 88년 재일교포 1세 정조문 씨가 일본 내 한국문화재를 수집해 교토에 세운 고려미술관 관장도 맡았다.

『고대 일본과 조선』(86년), 『고대 도교와 조선문화』(89년)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으며 2009년 한국 정부로부터 수교훈장 숭례장을 받았다.

도쿄=이정헌 특파원 jhleeh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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