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인간만이 펼칠 수 있는 창의력 세계 보여준 승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기사 이미지

이세돌 9단이 13일 알파고와의 네 번째 대국에서 승리를 하자 서울 포시즌스 호텔 기자실에서 이를 지켜보던 바둑 관계자와 취재진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 강정현 기자], [뉴시스]

“우와아아 이겼다!” 서울역 대합실 대형 TV 앞에서 한 남성이 환호성을 질렀다. 주변 사람 수십 명이 몰려들었다. 13일 오후 알파고가 돌을 던진 직후의 일이었다. 삽시간에 대합실에 있는 네 대의 TV 앞에 각기 100명가량의 시민이 군집했다. 이세돌 9단의 승리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기뻐했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충격서 환호로 바뀐 바둑계·시민
서봉수 “데이터로 움직이는 AI 한계”
과학계 “이세돌, 인류에게 선물 준 것”
네티즌 “인간, 1202개 CPU보다 훌륭”

 직장인 김명훈(29)씨는 “세 판의 대국을 지켜보면서 알파고의 기량이 압도적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다”면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승리를 따낸 이 9단의 정신력이 빛을 봤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9년간 바둑을 둬왔다는 최동희(57)씨 역시 “인간만이 펼칠 수 있는 창의력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승부”라며 “바둑 팬으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정말 감격스럽다”고 했다.

서울 관수동의 세계기원도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날 이 기원에는 20여 명의 바둑인이 모였다. 대국 첫날인 지난 16일 50여 명이 모인 것에 비해 절반 이상 줄어든 규모였다. 이 9단이 내리 3연패를 당하고 알파고의 승리가 확정되자 대국 자체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탓이었다.

바둑인들 사이의 승부 예측에서도 ‘이 9단이 한 판도 이기기 힘들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김상명(57)씨는 “대국이 이뤄질 때마다 기원에 모인 사람들끼리 내기를 하는데 오늘은 이 9단의 승리에 건 사람이 3명뿐이었다.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 9단의 승리가 확정된 순간 내기와는 상관없이 ‘인간의 승리’에 대해 뿌듯한 마음이 가득했다”고 말했다.

프로 바둑기사들은 이 9단의 승리를 함께 기뻐하면서도 냉철한 분석을 빼놓지 않았다. 박지은 9단은 “알파고에 대한 인간의 첫 승리라 기쁘기도 하지만, 알파고가 이전 대국과 달리 쉽게 무너져서 약간의 허무함은 있다. 알파고가 이해하지 못할 수를 많이 두고 치명적인 실수를 많이 해서 프로기사들 사이에선 오류가 난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했다. 박 9단은 “이번 승리를 발판으로 마지막 대국에서도 이세돌 9단이 끝까지 침착하게 유종의 미를 거뒀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서봉수 9단은 “오늘 승리는 입력된 데이터에 의해 움직이는 인공지능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고 생각한다”며 “알파고로서도 대응 못할 복잡한 국면이 펼쳐졌거나, 그만큼 아직 시스템상에 한계가 노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성룡 9단은 “이세돌 9단이 지난 패배에도 굴하지 않고 분석하고 또 분석해서 얻어낸 승리”라면서 “이 9단이 처음으로 인공지능의 한계를 이끌어낸 것 같다”고 분석했다.

기사 이미지

기자회견 뒤 철수하는 알파고 팀원들. 이 9단과 알파고의 마지막 대국은 15일 열린다. [사진 강정현 기자], [뉴시스]

로봇 공학자, 빅데이터 전문가 등의 반응도 비슷했다. 줄곧 알파고의 5대 0 승리를 예상해 온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빅데이터 MBA 김진호 주임교수는 “이 9단이 한 경기만 이겨도 진짜 천재인 것을 증명한 거고, 만약 두 번을 이긴다면 인류의 승리라고 말해왔다”면서 “오늘 승리는 천재(이세돌 9단)가 인류에게 선물을 준 것”이라고 했다.


▶관련기사
① “이세돌, 한 번도 힘들다 안 해…이길 방법 찾아 밤새 복기”
② ‘신의 한 수’ 78에 흔들린 알파고 “resigns” 돌 던졌다
③ 직원 250명 중 150명 박사 “알파고 힘의 원천은 집단지성”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문병로 교수는 “알파고는 근사계산(近似計算·정확한 수치를 낼 수 없을 경우 가까운 수치를 셈하여 내는 일)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일 뿐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공간보다 대상이 넓어지면 약점이 드러날 수 있다고 말해왔다. 오늘 중앙전에서 공간이 커지면서 약점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알파고가 이기면서 사람들 사이에 퍼지는 ‘필요 이상의 공포감’이 걱정이 됐는데 이번 대국에서 알파고도 프로그램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나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이 9단의 승리를 축하하는 글이 잇따랐다. 네이버의 네티즌 ‘kkna****’는 ‘1202개의 CPU보다 한 사람의 두뇌가 더 뛰어나다는 걸 보여준 결과다. 실체 없는 적과 싸운 이 9단에게 응원을 보낸다’는 글을 올렸다.

글=채승기·손국희·정진우 기자 che@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