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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와 이세돌의 진정한 대결은 바둑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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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 한국과학기술원 전기 빛 전자공학과 교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변명은 하지않겠다. 나도 이번만큼은 이세돌이 이길 거라 믿었다.

아니, 이세돌이? 인류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 이겨 주기를 바랬던 것인지도 모른다. 2015년 10월에 진행된 유럽 챔피언 판 후이와 게임에서의 알파고는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았다. 바둑을 모르는 나만의 의견이 아니다. 모든 바둑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이세돌 역시 너무나도 자신만만하지 않았던가? 우리 수준으로 아마추어 레벨에 불가한 유럽 챔피언과 이세돌 9단을 비교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 모두 기계학습 기술의 핵심 하나를 잊고 있었다. 기계는 잊어버리지도, 잠도 자지 않는다. 꾸준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업그레이드가 가능하기에 학습 데이터만 충분하다면 기하급수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단 5개월 만에 알파고는 너무나 빨리 그리고 너무나 많이 진화해버렸다. 사실 3월8일 저녁부터 찜찜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구글이 초대한 리세션에서 딥마인드사의 알파고 개발자들과 논의했을 때부터다. 그들은 너무나도 자신감 있어 보였다. 지난 5개월동안 자신들은 놀지 않았다고, 수많은 학습과 시뮬레이션을 반복했다고, 그리고 기계에게 진 유럽 챔피언 판 후이가 “인간 전문가”로서 딥마인드에서 자문을 하고있다고 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나만이 아니었다. 리셉션에서 구글이 제공한 음식과 술을 마시던 주변 사람들 모두 이런 생각을 하는 듯했다. 마치 곧 침몰할 타이타닉호에서 우리는 음악을 듣고 술을 마시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인류’라는 타이타닉호.

동물로 시작한 호모 사피엔스는 도시와 종교와 철학과 과학을 만들었다. 불과 수 십만 년 전까지 우리를 쉬운 사냥감으로 취급하던 사나운 맹수들. 그들의 후손은 동물원 우리 안에 갇혀 살고,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의 주인이 되었다.

산업혁명을 통해 만들어진 기계는 자동 생산을 가능하게 했고, 육체적 노동에서 해방된 인류는 지적인 노동을 하기 시작했다. 수학, 물리학, 공학, 전자공학, 뇌과학. 인간의 지적인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뇌를 연구하며 점차 이해하기 시작한 신경회로망과 학습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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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 한국과학기술원 전기 빛 전자공학과 교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뇌를 모방한 최초 인공신경망 퍼셉트론(Perceptron)은 다층 퍼셉트론 (multi-layer perceptron, MLP)을 가능하게 했고, MLP의 한계를 해결한 고다층 구조의 인공신경망은 ‘딥러닝’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소개된다. 불과 5-6년 전 일이다.

이미 기계는 얼굴을 사람보다 더 잘 알아보고, 물체를 더 잘 인식한다. 이제 바둑에서조차 사람을 이기기 시작한 기계는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를 위해 자동차를 운전해주고, 우리의 건강을 책임지고, 우리의 노후대책을 계획해줄 것이다. 지금껏 지적인 노동은 호모 사피엔스의만의 영역이었다. 학습하는 기계의 등장은 지적인 노동 역시 자동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있다. 자동 생산이 되는 순간, 지적인 노동 역시 대량생산이 가능해진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진정한 대결은 바둑이 아니다. 알파고의 승리는 어쩌면 그동안 경쟁자 없이 지구를 지배하던 호모 사피엔스의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지 모른다.

김대식, KAIST 전기 및 전자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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