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어려운 학우에 밥심 기부, ‘헬프 조선’ 실천 이호영…놀이처럼 즐기면서 돕기, ‘봉사의 맛’ 전파 김동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기사 이미지

이호영씨는 “공강 시간에 학생식당 일을 하며 모은 식권이 어려운 학우들에게 전달될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1만 장 식권 기증 ‘십시일밥’ 대표

[연중기획 매력시민] 세상을 바꾸는 컬처디자이너

한양대 4학년 이호영(26)씨는 지난 1년6개월간 빈 강의 시간을 교내 봉사활동에 썼다. 학생식당에서 식기 세척과 정리 등의 일을 하고 대가로 식권을 받았다. 받은 식권을 형편이 어려운 학우들에게 전달했다. “저의 작은 실천으로 누군가의 끼니 걱정을 덜어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딨겠어요?”

 이씨가 이 같은 활동을 시작한 것은 학생식당에서 우연히 식권 한 장으로 밥을 나눠 먹는 학생들을 보면서부터였다. “두 명이 계속 밥을 리필해서 같이 먹더군요. 관심을 갖고 보니 그런 학생들이 꽤 있었어요. 주변 친구들이 적어도 밥 걱정은 안 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이런 일을 시작했죠.”

 2014년 처음 학생식당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씨는 점차 다른 친구들을 설득해 40여 명을 모았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사자성어에서 이름을 따 ‘십시일밥’이라는 단체명도 지었다. 소속 학생들은 각자 공강 시간을 활용해 학생식당에서 일을 하고, 받은 식권을 모아 취약계층 학생들에게 전달한다. 그는 “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공강 시간을 활용하기 때문에 봉사에 참여하기가 쉽다”고 말했다.

기사 이미지

 ‘십시일밥’의 활동이 알려지자 순식간에 주변 학교로 퍼졌다. 한양대뿐 아니라 서울대·연세대·건국대·경북대 등 전국에서 500여 명의 학생이 참여하는 대표적인 대학생 봉사단체로 자리매김했다. 지금껏 ‘십시일밥’이 학생들에게 나눠준 식권만 1만 장이 넘는다. 이씨는 “ 가까이 있는 학우들을 돕기 때문에 참여자들이 더 뿌듯해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십시일밥’ 참여 학생들이 급속도로 늘어난 것에 대해 ‘동병상련(同病相憐)’을 이유로 꼽았다. “요즘 청년들을 3포세대(취업·연애·결혼을 포기한 세대)라고 하잖아요. 모두 힘든 걸 알고 있으니 다른 친구들을 위하는 마음도 커지는 거죠.” 그는 “우리들은 ‘헬(hell) 조선’이 아니라 ‘헬프(help) 조선’을 택했다”고 말했다.

 처음엔 ‘십시일밥’에 식권을 받으러 오는 학생들이 많지 않았다. 이씨는 “식권을 받기 위해 스스로 기초생활수급자라는 것을 증명하면서까지 ‘십시일밥’을 찾아올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난을 드러내지 않을 권리’가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후 ‘십시일밥’은 식권 나눠주는 일을 학교에 위탁했다. 학교를 통해 기초생활수급자 학생 모두에게 매달 20장씩 식권을 보낸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라도 생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사연을 받아 식권을 나눠준다. “형편은 힘든데 정부와 학교의 도움을 받을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학생들은 오히려 사각지대에 놓여 있죠. 갑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셨거나 몸이 다쳐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는 경우에도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의 최종 목표는 대학생 복지를 위한 비영리법인을 세우는 일이다. 주거와 교육 등 대학생들의 생활 전반에 걸친 종합적인 복지 혜택을 늘리는 게 목표다. 남들처럼 취업이 목전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십시일밥’ 활동을 위해 1년 휴학을 계획하고 있다. “공부와 취업 준비에 몰두할 수 있는 학생과 하루 8시간 이상 아르바이트를 해야 생활할 수 있는 학생은 애초에 출발선이 다릅니다. 그 격차를 줄이는 데 조그만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기획 봉사 이끄는 ‘애드벌룬’ 대표

기사 이미지

김동현씨가 봉사자들과 함께 벽화를 그린 서울 중화중학교 담장. 그는 “ 재미있는 봉사문화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사진 오종택 기자]

 ‘십시일밥’처럼 새로운 봉사문화를 선도하는 청년 단체가 또 있다. 국민대 3학년 김동현(26)씨가 대표로 있는 ‘애드벌룬’이다. “중·고등학교 때 의무적으로 봉사 시간을 채우잖아요. 봉사를 억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에요. ” 그래서 그는 봉사도 놀이처럼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김씨는 “봉사는 힘들다 는 생각을 없애고 참여를 끌어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애드벌룬’은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봉사활동을 펼친다. 어떤 활동을 할지는 김씨를 포함한 5명의 기획단과 매달 참가자들이 직접 정한다. 그동안 노숙인 자활을 돕는 잡지인 ‘빅이슈’ 판매자들을 위한 강연회, 노후한 학교의 담벼락을 꾸미는 벽화 작업, 소외계층을 위한 연탄 배달 등을 했다.

 지난해 광복절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투사들을 재조명하는 활동을 벌였다.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앞에서 낡은 한복을 입고 독립투사로 분해 연극을 펼쳤다. “제 이름은 채응언입니다. 1908년부터 8년 가까이 일본의 군경 기관을 공격한 ‘최장수 의병’이었습니다.” 그 옆에선 ‘박자혜’란 이름표를 단 젊은 여성이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독립운동가에 대한 설명이 담긴 팸플릿을 나눠줬다.

 이날의 퍼포먼스도 자원봉사자들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훌륭한 일을 했지만 후손들이 잘 몰라주는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해보자는 거였죠. 봉사자와 시민들 모두에게 좋은 역사 공부가 됐습니다.”

기사 이미지

 김씨가 ‘애드벌룬’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은 군 제대 직후인 2013년. 통장에서 매달 3만원씩 빠져나가는 구호단체 후원금을 보며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 이 돈이 어디로 가서 구체적으로 누구를 돕는지 알 수 없으니 전혀 뿌듯하지 않았어요. 봉사를 하는 사람이 정말 즐거울 수 있는 봉사활동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애드벌룬’ 참가자들은 매달 1만원씩 활동비를 낸다. 페이스북을 통해 참가자를 모집하는데, 대학생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봉사하러 온다.

김씨는 “‘애드벌룬’에서 처음 봉사를 한 사람들이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독거노인을 위한 연탄봉사에 참가했던 40대 여성은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노인복지관에서 정기적으로 봉사하고 있다.

 매달 애드벌룬 봉사활동에 참가하는 이들의 50%는 처음 오는 참가자이지만, 나머지 50%는 이미 한 번 참가했다가 재미를 붙여 다시 오는 사람들이다. 또 지난달에는 기존 5명의 기획단에 추가로 10명이 더 들어왔다.

 김씨의 올해 목표는 좀 더 유쾌한 봉사문화를 확산하는 일이다. “한국의 봉사문화를 바꾸고 싶어요. ‘애드벌룬’에서 ‘봉사의 맛’을 살짝 보고 간 사람들이 각자 위치에서 재미있는 봉사를 이어나가면 결국 큰 변화도 가능할 겁니다.”

윤석만·정진우·김나한 기자 sa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