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요구로 北 무기회사 '러시아 대표' 제재대상서 제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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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새로운 대북제재 결의안이 예상보다 늦게 채택된 것은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러시아 때문이었다. 러시아는 무역 규제 조항에서 추가적 예외 인정 등을 요구했고, 마지막에 결의안이 수정됐다.

러시아 막판 ‘몽니’로 제재안 채택 나흘 늦어져
러시아서 활동한 北 무기거래회사 대표, 제재 리스트서 제외
나진항 이용한 러시아산 석탄 수출 예외적 허용

당초 정부는 이르면 2월27일(현지시간) 새 제재안에 대한 안보리 회의 표결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핵심 국가들인 미국과 중국이 이미 협의를 끝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막판 변수로 등장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보통 북한 사안에선 중국의 입장에 러시아도 찬성하고 같은 방향으로 가는데 이번엔 좀 예외적이었다. 한·미·중이 함께 러시아를 설득하는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 존 케리 미 국무부 장관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장관에게 두 차례나 전화해 신속한 채택을 부탁했다. 러시아에선 박노벽 주러 대사가 숨가쁘게 뛰어다녔고, 외교부 본부에선 주한 러시아 대사관을 통해 간곡한 당부를 계속했다.

러시아의 수정 요구는 상당부분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석탄 수출 금지 조치에 ‘북한산이 아닌 외국 석탄의 나진항을 통한 수출은 예외를 인정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나진항에서 러시아산 석탄을 수출하는 건 북한항만 이용할 뿐 러시아의 수출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경우에도 사전에 안보리 북한제재위에 대량살상무기(WMD)와 무관한 경우란 걸 신고하도록 했다.

북한에 항공유의 공급이나 판매를 금지하는 조항에도 예외 단서가 붙었다. 북한 민항기가 외국에서 북한으로 돌아가는 목적으로 필요한 경우에 한해 재급유를 허용했다. 정부 당국자는 “베이징 정도는 재급유 없이 오갈 수 있지만, 모스크바는 거리가 멀어서 불가능한 것으로 안다. 쉽게 말해 고려항공이 모스크바 공항에 내렸는데 다시 평양으로 되돌아갈 연료가 모자라는 경우에는 항공유를 재급유할 수 있단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의 요구로 제재 대상이 1명 줄었다. 당초 미·중이 합의한 안에는 17명의 개인이 명단에 올랐으나 최종안에는 장성철 조선광업개발회사(KOMID) 러시아 대표가 빠졌다. 제재 대상에 오를 만한 행위를 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였지만, 그가 제재 대상에 오를 경우 북한의 WMD 관련 활동이 러시아에서 이뤄졌단 뜻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반발했단 게 복수의 정부 당국자들의 분석이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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