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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어둠에 파묻히지 않기 위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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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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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문화스포츠섹션부문 기자

2016년의 첫 두 달,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던 문장을 꼽는다면 “너무 늦은 건 아닐까”였다. 연말연시를 스쳐 지나가기 마련인 ‘나이 먹기’의 우울감을 지나치게 길게 끌고 있다는, 거참 부끄러운 고백이다. 멀쩡하게 일상을 보내면서도 ‘나 이렇게 계속 가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이 불쑥 솟아오를 때 아무나 붙잡고 묻고 싶어졌다. 인터뷰 도중 뜬금없는 질문으로 상대방을 당황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사는 건 어떠신가요. 괜찮나요,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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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 구마테쓰와 인간 소년 규타도 세상의 현자들을 찾아다니며 묻는다. 뒤늦게 챙겨본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괴물의 아이’(사진) 속 주인공들이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마음에 구멍이 생겨버린 규타는 우연히 괴물의 세계로 흘러 들어가 괴팍한 성격의 괴물 구마테쓰를 만난다. 지혜를 얻고자 여행을 떠난 둘은 만나는 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강해질 수 있나요”라고 질문한다. 하지만 쉽게 답이 얻어질 리 없다. 누군가는 “현실을 잊고 환상 속에 살라”고 하고, 누군가는 “그냥 멋대로 살면 돼” 알듯 말듯한 답을 내놓는다.

 괴물의 세계에서 규타는 위험한 존재다. 괴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나약해서 가슴 속에 어둠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그 어둠에 먹히면 자신과 세상을 파괴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규타는 구마테쓰와 동고동락하며 자라나 괴물 세계의 일원이 되지만 우연히 다시 인간 세계로 돌아가게 되고 이도 저도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갈등에 휩싸인다. 휑한 인간 도시의 한복판에서 마음속 어둡고 깊은 구멍과 다시 마주하는 규타. 그런 규타에게 구마테쓰는 소리친다. 그 어둠을 물리치려면 ‘가슴속 나만의 검(劍)’이 필요하다고. “가슴! 가슴속의 검을 찾아야 해!”

 영화는 유쾌하고 따뜻한 성장기다. 외로운 두 존재가 만나 서로를 어둠에서 구출하는 과정을 그린다. 우리 모두는 어둠에 먹히기 쉬운 약한 존재지만 서로의 가슴속 칼이 되어줄 수 있다는 잔잔한 위로. 지난 주말, 또 하나의 성장 스토리인 ‘쿵푸팬더3’를 봤다. ‘용의 전사’가 되었지만 이젠 무엇을 해야 하나 길을 잃은 주인공 포에게 우리의 귀여운 시푸 사부님이 이렇게 격려한다. “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해. 놀랍도록 강해질 수 있어.” 연말부터 이어진 종잡을 수 없던 우울감을 두 편의 멋진 애니메이션으로 달래는 중. 어둠이 점점 커져 파묻혀 버릴까 두려운 날엔 조용히 내 안의 검을 매만져 볼 일이다. 다행히 봄도 멀지 않았다.

이영희 문화스포츠섹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