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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30차례 KTX 소음…잠 못 드는 울산 활천마을 주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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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23일 오후 1시 8분.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활천마을. 120여 가구 251명이 사는 조용한 마을에 갑자기 ‘쿠구구구’하는 소리가 울렸다. 터널을 뚫고 나온 KTX열차(시속 300㎞)가 마을 위를 지나면서 낸 소리다. 땅도 울리는 기분이었다.

청력손실 유발하는 최고 81㏈ 소음
불면증 시달리고 송아지도 죽어
500m 구간 중 절반만 방음벽 설치

인근 밭에서 일하던 손임출(65·여)씨는 귀를 막고 “일상 생활이 힘들 지경”이라고 말했다. 신술필(72·여)씨는 “제대로 된 방음벽이 없어서 그렇다”며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곳은 하루에 KTX가 오전 5시쯤부터 다음날 오전 2시30분까지 최대 130여 차례 지난다. 문제 구간은 높이 6m 교량에 설치된 터널과 터널 사이 500m 가량이다.

이곳 방음벽은 1.5m 높이에 지나지 않고 전체 구간의 절반 정도에만 설치돼 있다. 주민들은 이 방음벽이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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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주군이 조사한 결과 열차가 지날 때 최대소음은 81㏈이나 된다. 일반적으로 소음 40㏈ 이상은 숙면방해, 50㏈ 이상은 호흡·맥박수 증가, 60㏈ 이상은 수면장애를 일으킨다. 70㏈에 장시간 노출되면 말초혈관의 수축반응이 일어나고, 80㏈이면 청력손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길에서 50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30여 가구의 피해는 더 심하다. 김종순(81·여)씨는 “소음으로 잠을 못 자 병원에서 준 수면제를 먹는다. 불면증이 심해지면서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분덕(86·여)씨는 “갓 태어난 송아지가 열차 소리에 놀라 죽기도 했다”면서 “벌써 4마리나 죽었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이 소음을 견디다 못해 하나 둘 떠나면서 마을엔 빈집이 늘고 있다.

서상오(58) 이장은 “남아있는 주민도 성격이 예민해져 사소한 일로 다툼을 자주 벌이곤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지금까지 한국철도시설공단 등에 5차례 민원을 제기했다. 터널과 터널 사이에 최소한 열차 높이 이상의 방음벽을 설치해 달라는 요구다. 하지만 공단 측은 “소음이 법 기준에 못 미친다”는 말만 했다.

 현재 법정 소음 한도는 주간 65㏈, 야간 60㏈이다. 그런데도 최대소음 81㏈이나 되는 활천마을이 ‘기준치 미달’로 분류된 것은 열차가 지날 때 측정되는 ‘최고소음도’가 아닌 ‘등가소음도’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등가소음도는 철로 주변 소음을 1시간 동안 측정해 평균치를 내는 방식이다. 열차가 지나가지 않는 시간대 소음까지 합산해 측정하는 것이다. 공단이 측정한 이 마을의 등가소음도는 법정 한도보다 낮은 58㏈였다. 주민들이 법 개정을 요구하는 이유다.

 서 이장은 “하루종일 차가 다니는 고속도로와는 달리 일정 간격을 두고 운행하는 열차의 소음을 등가소음도를 적용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훈환 울주군 생태환경과장은 “지난 19일 환경부에 법 개정을 요구했다 ”고 말했다.

유명한 기자 famo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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