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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바로 보는 북한] 개성공단에 두고 온 설비, 북한이 자체 운영할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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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가동중단 열흘을 넘긴 개성공단에는 요즘 적막함이 감돕니다. 이따금 순찰을 도는 북한 특구개발총국과 군부 소속 지프차량 외에는 인적이 끊겼습니다. 관할 6사단 병력이 개성시에서 공단을 연결하는 통문과 주변을 삼엄하게 지킨다고 하는군요.

“최단 시일내 관리” 군 문건 나와
투자유치 → 도발 → 몰수·전용 되풀이
2006년 경수로 때 두고온 중장비
최근 쏜 광명성 로켓 기지 건설에 써
금강산 관광버스 수백 대도 반출
평양서 운행하는 모습 드러나기도

김정은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10일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밝히자 북한은 하루만에 남측 인원의 추방과 자산 동결을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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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출 못하고 묶인 재봉틀과 정밀 공작기계 등 생산설비는 1조190억원에 이르는데요. 한국전력의 발전(480억원)과 KT의 통신(94억원) 설비도 포함됩니다. 의류와 신발·시계·냄비 등 완제품도 남겨둘 수밖에 없었죠. 현지 우리은행의 금고에 있던 달러 등 일부 현금도 챙겨나오지 못했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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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경수로 발전소의 콘크리트 타설작업. [중앙포토]

 북한의 다음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데요. 동결자산은 일단 개성시 인민위원회 관할로 넘겨졌습니다. 북한은 얼마뒤 자산 몰수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생산설비나 원자재를 몰래 반출하거나 공단을 독자 가동할 가능성도 있죠.

최근 공개된 북한군 6사단의 2006년 내부 문건은 “맡겨진 설비와 기재들을 능숙하게 다뤄 최단 시일내 공장을 자체적으로 관리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라”며 자체운영에 대비해왔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신의주로 공단을 옮긴다는 소문에 개성 지역은 술렁인다고 합니다.

 개성공단 설비와 원자재·제품을 빼돌릴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건 북한의 과거 행태 때문입니다. 우리 기업을 상대로 투자유치→도발→가동 중단→동결·몰수→전용(轉用)이란 패턴을 되풀이한 건데요. 2006년 1월 정부는 대북 경수로 건설에 참여했던 우리 인원을 금호지구(함남 신포시)에서 긴급 철수시켰죠.

핵 개발 중단 대가로 진행 중이던 경수로 사업이 북한의 합의 위반으로 파국을 맞았기 때문인데요. 당시 북한은 우리 업체의 중장비 93대와 덤프트럭 등 차량 190여 대, 6500t의 철근과 시멘트 32t의 반출을 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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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보 당국은 북한이 봉인을 뜯어버리고 포크레인과 승용차, 건설자재를 전용한 사실을 파악했는데요. 일부 중장비와 크레인 등이 이번에 광명성 로켓을 쏘아올린 동창리 미사일 기지를 건설(2009년 완공)하는데 쓰인 정황을 포착됐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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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몰수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중앙포토]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사업 중단 때도 우리 정부 소유의 이산가족 면회소(600억원)와 현대아산의 호텔, 에머슨퍼시픽사의 골프장 등 모두 3593억원의 자산을 몰수 조치했죠. 북한은 현대와의 독점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중국 관광객을 맞는데 남측 숙박시설 등을 써먹었습니다.

업체 관계자는 “골프 카트 등 장비를 대부분 빼내갔고 현대아산의 관광버스 수백 대도 몰래 반출해 평양에서 사용하는 게 드러나기도 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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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의 북한 근로자 출퇴근용 버스. [중앙포토]

 북한은 1996년 가동에 들어갔다 3년 만에 쫓겨나듯이 철수한 대우 남포공단에서 기계설비를 모두 뜯어가기도 했는데요. 당시 군부가 이를 주도했다고 하는군요. 대북 경수로 사업 때도 절도사태가 잇달아 골머리를 앓았다고 합니다.

공사에 관여했던 정부 고위 당국자는 “결국 남측의 경비용역 업체를 주둔시켰는데 철근·전선·시멘트 등을 털어가던 도둑을 잡고보니 북한군 장교와 부하들이었다”고 전합니다.

 북한은 우리 정부에 갚아야할 빚이 산더미인데요. 차관 형태로 2000년부터 7년 간 쌀 240만t과 옥수수 20만t을 빌려간 게 7억2000만 달러(8884억원)에 이릅니다. 또 신발 제조 등에 쓰겠다며 경공업 원자재 8800만 달러 어치도 꿔갔죠.

남북 철도·도로 연결에 쓴 레일과 아스팔트 등에도 1억4000만 달러의 빚을 졌습니다. 정부는 수차례 채무를 갚으라고 밝혔지만 북한은 통지서조차 수령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북한은 우리 측의 투자나 차관공여를 ‘푼돈’ 운운하며 공단 가동중단 책임을 떠넘기는데 급급한 모습인데요. 조만간 아무일 없었다는 듯 밀린 북한 근로자 임금을 내놓으라며 우리 기업에게 독촉하고 나서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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