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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명이 열흘 하던 4㎢ 숲 조사, 드론 띄우면 하루에 끝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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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의 한 잣나무림에서 산림업체 인부들이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작업을 벌이고 있다. 상층부가 갈색으로 변한 채 시들어 있는 게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나무다. [사진 김성룡 기자]

눈발이 휘날리던 지난달 26일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대쌍령리의 한 야산. “윙” 하며 전기톱이 밑동에 닿자 키가 20m 가까운 나무가 몇 초 만에 쓰러졌다. 잣나무는 잎이 사철 푸른 게 보통인데 이 녀석은 꼭대기가 갈색으로 시들어 있었다. 한번 감염되면 고사율 100%라는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것이다.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현장 가보니

 군데군데 꼭대기가 붉게 변한 나무가 여럿 눈에 띄었다. 여기에선 1년 전에도 재선충병에 걸린 잣나무를 1000그루 넘게 베었다. 그런데 재선충병이 또 도진 상태였다. 경기도 광주시는 전국에서 재선충병이 가장 극심한 지역 중 하나다.

 “재선충병에 걸려 고사한 나무는 재선충병 매개체인 솔수염하늘소나 북방수염하늘소의 산란처가 됩니다. 이런 나무는 발견 즉시 벌목하고 파쇄나 열처리를 해 나무 안에서 월동하고 있는 애벌레를 박멸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애벌레가 봄에 성충이 돼 재선충병을 더 퍼뜨립니다.”

 현장에 있던 임상섭 산림청 산림병해충과장의 설명이다. 나이테를 살펴본 임 과장은 “수령이 25년은 족히 넘은 나무”라며 “하늘소는 키가 크고 생장력이 좋은 나무의 새순을 뜯어먹고 살기 때문에 이런 나무가 하늘소의 최우선 타깃이 된다”고 말했다.

 1988년 처음 발병한 이래 재선충병은 산림청의 가장 큰 골칫거리로 자리 잡았다. 신원섭 산림청장이 올해 시무식을 경북 포항의 재선충병 현장에서 했을 정도다. 재선충병으로 인한 공익적 피해액은 2010∼2014년에만 7858억원에 이른다.

전국 산림 중 26.3%를 차지하는 소나무·잣나무림의 공익적 가치가 29조원임을 감안하면 적잖은 피해다. 산림청은 올해에만 재선충병 방제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에 764억원을 지원한다.

 임 과장은 “지자체별로 피해목을 얼마나 빨리 발견해 방제 노력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재선충병 재발률이 달라진다”고 했다. 현재까지 재선충병이 발병한 지자체는 102곳. 이 중 강원도 동해시와 전남 목포시·신안군·영암군 등 17개 시·군·구는 신속한 방제 덕분에 재선충병 청정 지역으로 유지되고 있다.

 재선충병 피해목은 2013년 218만 그루, 2014년 174만 그루, 지난해 95만 그루로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그나마 인접 국가에 비해선 사정이 나은 편이다. 안의섭 산림청 사무관은 “우리나라는 애국가에도 등장할 만큼 소나무에 대한 정서적 애착이 커 적극적으로 방제를 해온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보다 훨씬 이른 1905년 재선충병이 발견된 일본에선 현재 보호수나 방풍림 위주로 방제를 하고 있다. 85년 재선충병이 나타난 대만은 소나무를 포기하고 차나무로 수종을 갱신 중이다. 중국도 82년 첫 발병한 이후 재선충병 피해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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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림청은 재선충병을 잡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 중이다. 지난해부터는 피해목을 찾아내기 위해 드론(무인항공기)까지 투입했다. 이전엔 전문조사원 2명이 한 팀을 이뤄 숲속을 걸어다니며 조사했다. 이 방식으론 4㎢ 조사에 열흘이 걸렸다.

 하지만 드론을 활용하면 하루면 충분하다. 무인항공기가 찍은 소나무림 사진을 판독하면 피해목의 위치도 자동으로 파악된다.

문일성 소나무 재선충병 모니터링센터장은 "드론을 활용하면서 사람의 접근이 쉽지 않은 산 정상의 조사도 한결 용이해졌다”고 말했다. 산림청은 드론을 이용한 조사 면적을 지난해 40㎢에서 올해는 500㎢로 12배 이상 확대하기로 했다.

 발병 지역에서 나무를 베어내는 방식도 바꿨다. 이전엔 재선충병에 걸린 나무만 베어내는 방식을 주로 썼다. 하지만 지난해부턴 주변 20m 이내의 나무를 모두 베어내는 ‘모두 베기’ 방식을 도입했다. 재선충병 재발률은 낮추고 피해목 재활용도는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 방식에선 베어낸 나무를 1m 길이로 잘라 더미를 쌓고 약품을 뿌린 뒤 특수비닐로 밀봉했다. 그런데 재선충병에 대한 인식이 약한 주민들이 땔감용으로 나무를 가져가는 부작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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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모두 베기를 하면서 원목 상태로 나무를 옮겨 잘게 파쇄하는 방식이 도입됐다. 나무 속에 있는 하늘소 애벌레가 살아남지 못하도록 1.5㎝ 이내 두께로 잘게 썰거나 아예 더 잘게 파쇄해 톱밥을 만든다.

이날도 경기도 곤지암읍 열미리 하천에 설치된 파쇄처리장에서 이런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굴착기로 집어 나무를 파쇄기에 넣자 톱밥 가루가 쏟아졌다. 톱밥은 축사에 팔리거나 목재 연료인 펠릿(pellet)으로 재활용된다.

 하지만 모두 베기는 경관이 나빠지는 약점이 있다. 이날 모두 베기가 막바지 단계인 곤지암읍 수양리국유림은 곳곳에서 맨 흙을 드러내고 있었다. 산림청은 올봄 이곳에 대체 수종을 심을 계획이다.

이곳의 나무는 벌목 전 단계에서 인근 목재 가공 업체에 매각됐다. 업체가 재활용 전에 열처리를 하는 조건을 붙여서다. 지난해 이런 조건으로 재선충병 피해목을 민간업체에 팔 수 있도록 관련 법이 개정되면서 가능해진 방법이다.

 안 사무관은 “예전 같으면 산림청이나 지자체가 방제 작업을 맡긴 산림업체에 비용을 지급했는데 새로운 방법으로 그루당 6만여원의 방제 비용을 절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여기서 피해목을 사들인 목재 가공업체는 1.7㎞ 떨어진 곳에 사업장을 두고 있었다. 안 사무관은 “재선충병 확산을 막기 위해 파쇄나 열처리 전엔 피해 발생 지점에서 2㎞ 밖으로는 피해목의 반출을 법으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곳으로 오는 피해목의 70%는 수출용 팰릿(pallet)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팰릿은 지게차로 물건을 나를 때 쓰는 나무 받침대다. 목재 중심부에 섭씨 56도로 30분간 열을 가한 뒤 열처리를 거쳤음을 표시하는 도장을 팰릿마다 찍는다. 열처리가 이뤄진 국가 코드와 해당 업체의 등록번호가 담긴 도장이다. 사후 추적과 검증이 가능하도록 규정한 검역 관련법에 따른 조치다. 이런 도장이 없는 팰릿은 검역을 통과할 수 없다.

 이 업체의 장병철 대표는 “도매상을 거쳐 400여 업체에 팰릿이 팔려나가는데 그중엔 TV·냉장고를 수출하는 대형 가전회사들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들어온 피해목 중 70%는 팰릿으로 제작되고 껍질부 등 30%는 톱밥으로 만들어진다.

 재선충병은 국내의 한 동물원이 일본에서 원숭이를 수입하면서 유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림청은 원숭이를 넣어온 목재 상자에 재선충을 지닌 하늘소가 딸려 왔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현재에 비해 검역이 허술하던 때다.

 재선충병은 과연 퇴치될 수 있을까. 신원섭 산림청장은 “무인항공기와 모두 베기 등 새로운 방제 방식을 적극 활용해 재선충병 피해목을 내년엔 40만 그루, 2018년엔 10만 그루 수준으로 낮추도록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S BOX] 하늘소 30~40%서 재선충 발견…한 마리가 열 그루 고사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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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재선충은 가는 실 모양으로 크기는 0.6∼1㎜다. 솔수염하늘소나 북방수염하늘소를 통해서만 이동이 가능하다. 하늘소는 재선충병으로 고사했거나 자연적으로 쇠약해져 송진이 나오지 않는 소나무나 잣나무에 알을 낳는다. 정상적인 나무는 송진이 면역 작용을 해 알이 부화하기 어렵고 부화되더라도 유충이 살아남기 어려워서다.

국립산림과학원 병해충연구과에 따르면 하늘소 중 30∼40%에서 재선충이 발견된다. 솔수염하늘소는 5∼11월에, 북방수염하늘소는 4∼8월에 성충으로 활동한다. 성충은 크기가 2.2∼3㎝다.

하늘소는 나무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새순을 갉아먹는다. 이때 하늘소에 붙어있던 재선충이 침투해 나무를 고사시킨다. 하늘소 한 마리는 열 그루 안팎의 나무를 옮겨다닌다.

산림청은 5∼8월 약제를 살포해 하늘소를 방제한다. 도심 주택가나 문화재보호구역, 친환경농산물 재배지 주변에선 약제 살포 대신 하늘소를 유인하는 페로몬을 넣은 포획통을 설치해 하늘소를 잡는다.

하늘소는 재선충병이 발병하기 전에도 한국에 살았지만 재선충병이 유입되고 산란처가 많아지면서 개체 수가 급증했다. 재선충병을 옮기는 하늘소는 세계적 희귀종인 장수하늘소와는 전혀 다른 종이다.

글=성시윤 기자 sung.siyoon@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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