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120일간 빌려줘…‘공유경제’ 제도권 본격 편입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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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과 합법 사이 경계에 있던 공유 민박·카세어링 등 '공유경제' 의 제도권 편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7일 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가 합동으로 발표한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의의 투자 활성화 대책에 공유경제 활성화가 포함됐다. 먼저 ‘공유민박업(가칭)’을 신설해 거주 중인 주택을 숙박서비스에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현행법상 숙박업 등록 없이 돈을 받고 집을 빌려주는 것은 불법이다. 규제를 풀되 속도는 조절한다. 공유민박업은 관광산업을 지역 전략산업으로 신청한 부산·강원·제주에 규제프리존을 설치한 뒤 이 지역에 우선 도입한다. 추후 경과를 반영해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기존 숙박업 보호 차원에서 지역을 도시(전용주거지역 제외)로 한정하고, 운영 일수도 연 120일 내로 제한한다. 주택이 아닌 상업시설인 오피스텔을 대량으로 임대해 숙박업에 활용하는 사례는 엄중 단속하기로 했다.

조용수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규제프리존을 만들어 시범사업 형태로 진행한다는 점이 긍정적”이라며 “공유경제가 좋은 것이라는 소비자와 지역 경제의 경험이 축적되면 시장은 자연스레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도시와 젊은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 중인 차량공유업에도 힘을 싣는다. 우선 면허정보를 제공 범위를 확대한다. 쏘카와 같은 차량공유업체는 경찰청과 도로교통공단의 면허정보시스템으로 회원의 면허정보를 조회하고 운전부적격 여부를 판단한다. 그러나 지금까진 면허 보유 유무만 알 수 있고, 면허 종류와 면허 정지 여부는 파악할 수 없었다. 법적 근거를 마련해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업체가 지방자치단체 공영주차장을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4월엔 차량공유 시범도시를 지정한다. 시범도시 안에서는 업체에 교통유발부담금 감면 혜택을 준다. 행복주택과 뉴스테이에도 차량공유 서비스를 적용한다. 현재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55개 단지에서 임대주택 입주민을 상대로 차량공유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500세대 이상 단지와 신혼부부 특화단지에 적극 도입할 계획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차두원 박사는 “규제를 풀면 우버나 에어비앤비 등 외국 공유경제 강자들이 밀려들어올 텐데 그에 반해 국내 기업은 스타트업 수준”이라며 “공공조달 등 기업을 지원하는 방안이 추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훈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역시 “외국 기업의 공세가 거세질 우려가 있지만 규제를 그대로 두면 국내 기업은 아예 성장할 기회조차 잡지 못한다”며 “일본처럼 세제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기초체력을 키워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1월 25일부터는 투자의 대가로 지분을 받고, 이익을 배분 받는 ‘증권형 크라우드 펀딩’도 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사업경력 7년 이하의 벤처기업은 연간 최대 7억원까지 자금을 모을 수 있게 됐다. 단 일반투자자의 투자한도는 연 500만원으로 제한한다.

정부의 이 같은 입장 변화는 모바일 플랫폼에 기반한 공유경제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세계 공유경제 시장규모는 2010년 8억5000만 달러에서 2014년 100억 달러로 커졌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PwC에 따르면 2025년에 3350억 달러 시장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는 “경제가 역동성을 잃지 않기 위해선 새로운 산업과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며 “다만 기존 산업의 피해가 불가피한 만큼 공존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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