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않고 애 보는 아빠, 4년 내 15%까지 늘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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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게임회사에 근무한 지 5년이 된 배모(34·서울 송파구)씨는 지난해 첫아들을 봤다. 손목이 아픈 부인의 육아 부담을 덜기 위해 육아휴직을 쓰고 싶었지만 회사 눈치를 보다 결국 사흘간의 출산휴가에 만족했다. 배씨는 “직속 상사가 여성이라 편의를 많이 봐주는데도 회사 내 남성이 육아휴직을 쓴 선례가 없어 포기했다”고 말했다.

여가부 등 건강가정계획 확정
배우자 출산휴가 이행 감독 강화
허용 않는 기업에 과태료 부과
기업, 얼마나 참여할지는 미지수

 배씨 같은 아빠들이 육아휴직에 참여하는 비율(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율)은 5.6%(2015년 기준)다. 정부는 이 비율을 2020년엔 15%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일·가정 양립 정책을 통해서다.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 등 14개 부처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3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16일 확정했다.

 정부는 우선 기업의 참여를 독려하기로 했다. 기업이 배우자 출산휴가를 제대로 주고 있는지 근로 감독을 강화한다. 고용부 조사 결과 현재 배우자 출산휴가제를 도입한 기업(종업원 5인 이상 1000곳)의 비율은 53.2%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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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가 배우자 출산휴가를 신청했는데도 이를 허용하지 않는 기업에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리고 건강보험 정보를 활용해 출산휴가를 주지 않거나 임신·출산기간에 부당 해고하는 사업장에 최고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의 벌금을 가하기로 했다.

 기업의 아빠의 달 지원도 확대된다. 아빠의 달이란 부부 중 두 번째로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첫 달의 육아휴직급여를 통상임금의 100%까지 지원하는 제도다. 지난해까지 급여 지원은 첫 달(최대 150만원)에만 그쳤으나 올해부터 3개월(최대 450만원)로 늘어난다.

 정부는 중소기업 근로자에게 유아휴직 혜택이 미칠 수 있도록 기업에 제공하는 육아휴직지원금을 현재 근로자 한 명당 월 20만원에서 2017년 월 40만원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첫 번째로 육아휴직을 쓰는 남녀 근로자가 있는 중소기업이 대상이다.

 육아휴직 대신 근무시간을 줄여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제도(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당초 1년에서 2년으로 늘어난다. 3회로 분할해 2년을 채울 수도 있다. 정부는 이 제도를 도입하는 기업에 대해 지원금을 더 주기로 했다. 육아휴직 후 경력이 단절되지 않도록 육아휴직자의 복귀와 적응을 돕는 방안도 시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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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를 위해 교육 프로그램 매뉴얼을 만들어 기업에 배포할 계획이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육아휴직 이후 동일 직장에서 1년 이상 경력을 유지하는 비율은 51.1%로 2명 중 한 명에 그치고 있다. 근로자가 육아휴직 신청 시 사업주가 처리하지 않더라도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신청한 휴가일에 휴가가 시작된 것으로 간주하는 법 개정도 이뤄진다.

 남성의 실질적인 육아 참여를 돕기 위한 방안도 이번에 포함됐다. 아이 응급처치법, 소통방법 등 교육 과정을 만들어 운영하고 여성의 임신과 출산시기별 남성의 역할이나 관련 정보가 담겨 있는 ‘예비 아빠 수첩’을 나눠 줄 계획이다.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아빠를 매달 공모해 시상하고 예방접종이나 공공기관 육아시설 이용 할인권 등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일·가정 양립은 남성, 기업 모두가 함께 실천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가부는 이날 여성인재 활용과 양성 평등 실천 태스크포스(TF) 운영위원회도 열고 대기업이 중소 협력사에 직장어린이집 공동 이용 등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면 동반성장지수를 평가할 때 가점을 주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선 실효성 논란도 제기된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남성의 육아 참여를 정부 정책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조기 명예퇴직이 늘어나는 마당에 기업들도 육아휴직 확대에 동참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동시장 문화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공공 부문부터 솔선수범하며 민간의 참여를 유도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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