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종자 굴기’…태클 거는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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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씨앗 전쟁의 싹이 텄다. 분쟁의 씨앗은 스위스 종자·농약업체 신젠타다. 중국의 국유기업 중국화공집단공사(켐차이나)가 신젠타를 430억 달러(51조5579억원)에 인수하기로 하자 미국 정부가 태클을 걸고 나섰다.

신성장 동력으로 떠오른 종자산업
중국, 세계 3위 신젠타 인수나서
미국은 국가 안보 내세워 제동
중국 정부 ‘안정적 식량 공급’ 의지
위안화 가치 하락 전 마무리 할 듯

두 회사의 이사회는 최근 합병을 승인했다. 주주총회 승인 과정만 남겨 놓았다. 세계는 놀랐고, 종자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두 회사의 합병이 완료되면 미국과 중국이 세계 종자시장을 양분하게 된다. 중국 종자굴기(?起)의 서막이 열리는 것이다.

신젠타는 2000년 제약회사 노바티스와 제네카의 농화학부문 합병으로 태어났다. 세계 최대의 농약업체이자, 3위의 종자업체다. 지난해 매출은 134억 달러다. 본사는 스위스 바젤에 있고 전 세계 90개국에 2만8000명의 직원을 뒀다.

신젠타를 인수하면 중국화공의 농약·종자부문 매출(181억 달러)은 세계 2위로 뛰어오른다. 지난해 12월 합병에 합의한 다우케미컬과 듀폰(186억 달러) 다음이다. 미국 몬산토(156억 달러)와 독일 바이엘 크롭사이언스(126억 달러), 바스프(73억 달러)를 제친다.

미국은 이런 인수합병(M&A)이 껄끄럽다. 종자산업은 식량안보와 연결돼 국가 안보 차원에서 중요하다. 중국이 종자산업 대국이 되면 미국으로서는 부담이다. 규제 장벽을 높게 세우는 이유다. 미국 정부기구인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가 나섰다.

CFIUS는 재무부와 국토안보국 등 16개 정부 기관이 참여해 미국 내 자산 인수합병이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지를 결정하는 기구다. 신젠타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생산 공장과 연구소를 두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신젠타의 북미 지역 판매는 전체 매출의 27%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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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IUS가 반대하면 두 회사의 합의는 무효가 될 수 있다. CFIUS는 지난해 중국 투자펀드가 필립스의 조명 사업부의 자회사로 자동차 조명과 LED 부품을 취급하는 루미레즈를 인수하려고 하자 퇴짜를 놨다. 필립스는 네덜란드 회사지만 일부 생산 공장 등이 미국에 있다. 2012년 중국 기업 랄스가 오리건주 풍력발전단지를 매입하려고 하자 드론 시험비행 인근 지역이라는 이유로 승인하지 않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CFIUS가 중국화공의 신젠타 인수에 대해 조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중국화공의 런젠신(任建信) 회장은 “미국 규제당국의 조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며 M&A 승인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이 신젠타를 놓고 힘겨루기를 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종자 산업이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기 때문이다. 업계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합종연횡에 나서고 있다. 신젠타에 러브콜이 이어졌다. 바스프와 몬산토, 중국화공이 구애의 대열에 섰다.

470억 달러의 인수가를 제시한 몬산토는 퇴짜를 맞았다. 신젠타는 오히려 더 적은 액수를 제시한 중국화공의 손을 잡았다. 인수대금 전액을 현금으로 지급하겠다는 ‘통 큰 베팅’이 통했다.

본사도 스위스 바젤에 그대로 두고 인력을 줄이지 않겠다고 했다.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글로벌 플레이어로 도약을 꿈꾸는 중국화공은 신젠타를 손에 넣으면 세계 시장 공략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신젠타 소유 지적재산권도 확보할 수 있다. 신젠타는 유전자변형식품(GMO) 등 종자 개량에 대한 기술도 보유하고 있어 매력적인 기업이다.

기업 차원의 손익만 따진 것이 아니다. 중국의 국가적 필요도 그 배경에 있다. 중산층이 늘면서 중국 내 곡물 수요는 늘고 있다. 반면 도시화 등으로 경작지는 점차 줄고 있다. 토지 생산성도 떨어진다.

유엔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헥타르(㏊=1만㎡) 당 곡물 생산량은 미국의 3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경작 가능한 토지의 20% 가량은 오염된 것으로 알려졌다. 식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우수한 종자 확보가 국가적으로 절실하다.

게다가 중국은 세계 2위의 종자시장이다. 지난해 1~9월 중국은 6300t의 종자를 수입했다. 전년 동기대비 2.9배나 늘었다. 중국 정부는 종자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뉴욕타임스(NYT)는 “14억 인구에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조치”라고 보도했다. 새해 들어 본격화한 중국 국유기업의 해외 기업 사냥도 분위기를 조성했다. 중국화공이 최전선에 서 있다. 신젠타에 앞서 올 들어 이미 2건의 굵직한 해외 M&A를 성사시켰다.

지난달 스위스의 원자재 거래업체 머큐리아와 독일의 기계장비업체 크라우스마파이를 인수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 기업이 지난달 외국 기업을 사들이는 데 쓴 돈만 680억 달러에 이른다.

업계에서는 CFIUS가 두 회사의 M&A를 완전히 막지는 못할 것으로 본다. 다만 미국에 위치한 공장과 연구소는 매각 대상에서 제외하라고 할 가능성은 있다.

2013년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가 캐나다의 넥센에너지를 182억 달러에 사들일 때도 미국은 넥센이 보유한 멕시코 걸프지역의 유전이 미국 군시설과 근접해 있다며 해당 유전 운영 금지를 조건으로 M&A를 승인한 적이 있다.

WSJ은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면 M&A 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에 중국 기업들이 해외 기업 사냥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전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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