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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와 격정의 롤러코스터…더 깊어진 쇼팽을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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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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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반을 완전히 장악한 조성진. 2일 그의 음악은 움직이는 머릿결과 몸짓을 통해 완성됐다. [사진 크레디아]

환상적인 연주였다. 더 깊어진 음악성이 뚜렷하게 전달됐다. 조성진의 연주에 숨죽이던 청중은 참았던 환호를 터뜨렸다. 뜨거운 기립박수로 영웅의 귀환을 환영했다.

조성진 1년 만의 귀국 무대
‘환상곡’ ‘영웅 폴로네즈’ 연주
건반 장악한 ‘최고’의 자신감
머릿결·몸짓에 관객들 환호
관객 80% 여성…암표까지

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제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 갈라 콘서트가 열렸다. 지난해 쇼팽 콩쿠르 입상자 6명과 야체크 카스프치크가 지휘하는 바르샤바 필하모닉 무대였다. 서로 다른 프로그램으로 열린 2시와 8시 공연 모두 조성진이 대미를 장식했다.

낮공연 2부 마지막 순서. 전대미문의 환호 속에 조성진이 등장했다. 1년 만의 고국무대였다. 첫곡 ‘녹턴’ Op.48-1에서 조성진은 촉촉한 서정성을 전달했다. 들리는 음량이 다른 연주자보다 컸다. 연주에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내부의 격정을 전달하는 제스처가 자연스러웠다. 콩쿠르의 영광이 있기까지 그가 겪은 외로움과 시련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듯했다.

쏟아지는 갈채에 짧게 답한 조성진은 곧바로 ‘환상곡’ Op.49를 연주했다. 청중의 귀를 붙들어 매며 건반을 완전히 장악했다. 조성진의 해석은 움직이는 머릿결과 몸짓을 통해 완성됐다. 고요함과 격정을 롤러코스터처럼 오가며 청중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영웅 폴로네즈’ Op.53은 점층적으로 부풀어 오르는 후반부의 볼륨감이 당당했다. 앙코르는 ‘녹턴’ 20번. 시리도록 맑은 서정미의 극치였다.

밤 공연 마지막. 조성진은 지휘자 카스프치크와 나란히 등장,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했다. 힘차고 강렬한 첫음부터 영롱한 고음으로 표현하는 서정성까지, 매순간 빛나며 전력을 다하는 연주였다.

지휘자와 눈을 맞춰가며 연주에 전념하는 조성진의 얼굴은 땀에 젖어 있었다. 2악장 라르게토는 조성진이 주도했다. 그 어떤 방해물도 없이 자유롭게 감각의 정원을 거닐었다. 3악장은 기쁨의 노래였다. 맑은 날 시냇물의 조약돌처럼 유려하고도 빛나는 연주였다.

기립박수 세례에 답하던 조성진은 2시 공연서도 연주한 ‘영웅 폴로네즈’를 앙코르로 선사했다. 여전히 씩씩하고 신선함을 잃지 않은 연주였다. 커튼콜은 그칠 줄 몰랐다.

다른 입상자들의 연주도 눈길을 끌었다. 샤를 리샤르 아믈랭(2위)은 자신만의 목소리를 각인시켰다. 홍일점 케이트 리우(3위)는 단단하고 과감한 연주를 선보였다. 에릭 루(4위)와 이케 토니 양(5위), 드미트리 시쉬킨(6위)도 6인 6색의 쇼팽 성찬에 동참했다.

인터파크 집계에 의하면 이날 티켓 구매자 중 20대와 30대가 전체의 67%, 여성 대 남성 비율은 80대 20이었다. 젊은 여성관객이 압도적으로 많이 관람했음을 알 수 있다.

2일 하루, 2500석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더블헤더’를 치렀다. 두 공연시간을 합치면 6시간이 넘는다. 평일 2시에 북적인 공연장은 생소했다. 공연 전 로비의 음악팬들은 조성진의 연습 장면을 지켜보느라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티켓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혹시 모를 취소 티켓을 기다리며 초조한 표정으로 줄을 섰다. 클래식 공연으로는 이례적으로 암표상이 등장했고, R석(18만원)이 80만원까지 치솟았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화장실에는 이용객이 몰려 한때 물 공급이 중단되기도 했다.

더욱 뜨거워지는 ‘조성진 신드롬’. 이날의 열기가 클래식 음악계 전반의 관심 제고와 저변 확대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객원기자 mozar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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