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적이다, 미국서 다시 만난 부산 친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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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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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

1991년 부산 수영초등학교에 3학년 꼬마가 전학을 왔다. 야구부 소속이었던 이 꼬마는 전학오자마자 같은 반의 덩치 큰 친구와 친해졌다. “친구야, 같이 야구 하자.”

이대호, 시애틀과 1년 계약 임박
인센티브 포함 연봉 48억원 합의
오늘 메디컬테스트 통과 땐 확정
텍사스 추신수 권유로 야구 시작
아메리칸리그 서부 지구서 대결

이대호(34)가 야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다. 그에게 야구를 권유한 전학온 친구의 이름은 추신수(34·텍사스 레인저스)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이대호는 대동중-경남고, 추신수는 부산중-부산고로 진학했다. 절친한 친구였던 이대호와 추신수는 부산을 대표하는 라이벌이 됐다. 2000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 대표팀에서도 둘은 나란히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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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초등학교 시절 함께 야구를 했던 이대호(왼쪽 둘째)와 추신수(가운데). [사진 MBC 화면 캡처]

이후로 이대호와 추신수는 계속 엇갈렸다. 2001년 고교를 졸업한 추신수는 마이너리그를 거쳐 2005년 메이저리그(MLB)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했다. 이대호는 연고 팀인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고, 2012년엔 일본에 진출해 4년을 뛰었다. 한국과 일본에서 최고가 된 이대호가 다시 한 번 친구를 따라간다. 추신수가 있는 MLB, 추신수의 첫 팀이었던 시애틀이다.

이대호의 시애틀 입단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계약기간은 1년, 연봉은 인센티브 포함 총액 400만 달러(약 48억원)다. 4일 메디컬테스트(신체검사)를 통과하면 계약이 확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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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는 지난달 4일 미국으로 출국한 뒤 롯데의 훈련지인 애리조나주 피오리아에서 땀을 흘렸다. MLB 팀과의 계약이 계속 늦어졌지만 이대호는 흔들리지 않고 미국행을 준비했다. 뚝심있게 믿고 기다린 끝에 꿈에 그리던 MLB 계약서를 손에 쥐게 됐다.

지난해까지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활약한 이대호는 팀을 일본시리즈 2년 연속 우승으로 이끌었다. 지난해 일본시리즈 최우수선수상(MVP)을 받은 뒤 그는 MLB 진출을 선언했다.

이대호는 “내 꿈은 메이저리거다. 어느덧 나이가 30대 중반에 접어들었는데 이번이 미국 진출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대호는 앨버트 푸홀스(35·LA 에인절스)를 고객으로 둔 대형 에이전시인 MVP스포츠그룹과 손을 잡고 미국행을 타진했다.

그러나 박병호(30·미네소타 트윈스)·김현수(28·볼티모어 오리올스)보다 MLB 진출 준비가 몇 달 늦었다. 게다가 지난해 11월 프리미어 12 대표팀에 합류하느라 한 달 가까이 손해를 봤다.

대신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이대호는 지난해 12월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렸던 MLB 윈터미팅에 참가, 구단 관계자들과 에이전트에게 자신을 알렸다. 계약이 늦어지면서 이대호의 제한된 포지션(1루수 또는 지명타자)과 느린 발이 걸림돌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소프트뱅크는 이대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3년간 최대 18억 엔(약 186억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오 사다하루(왕정치·76) 회장이 직접 나서 이대호의 잔류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대호는 꿈쩍도 하지 않고 미국에 머물렀다. “추신수가 아니었다면 난 야구를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던 이대호는 친구를 따라 아메리칸 드림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둘을 잘 아는 야구인은 “둘은 친구지만 라이벌이기도 하다. 추신수가 성공했으니 이대호는 ‘나도 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애틀과 텍사스는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에 함께 소속된 팀이다. 올 시즌 개막전을 포함, 19차례나 맞대결을 펼친다.

올 시즌 시애틀의 주전 1루수는 아담 린드(33·미국)다. 지난 시즌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타율 0.277, 20홈런, 87타점을 기록한 린드는 지난해 12월 트레이드를 통해 시애틀 유니폼을 입었다. 이대호는 린드와 주전 1루수 경쟁을 벌일 전망이다. 린드는 MLB 통산 타율 0.274, 166홈런, 606타점을 기록한 왼손 거포다.

그러나 왼손투수를 상대로는 통산 타율이 0.213에 그친다. 지난해엔 왼손투수로부터 홈런을 하나도 뽑아내지 못했고, 타율도 0.221에 그쳤다. 왼손 투수가 선발로 나온다면 이대호가 선발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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