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파업 단기적 대응은 자제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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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출퇴근자나 여행객에게 큰 불편을 겪게 했고 수출품 선적이나 수입자재 운송에 상당한 차질을 빚게 했던 철도노조의 불업파업 사태가 진정되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불법적인 집단행동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는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화물연대와 조흥은행 노조는 이미 불법적인 파업을 통해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관철시켰고,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시행에 대한 전교조의 반발로 교육현장에 혼란과 갈등이 증폭하고 있다.

또한 운임료 인상을 둘러싼 노사협상이 지지부진하자 화물연대는 2차 운송거부를 예고하고 있고, 택시기사.레미콘기사들도 세금 감면 등 정부의 특별 대책을 요구하며 집단행동에 돌입하려 하는 등 앞으로도 노사 혹은 노정 간의 갈등과 대립은 지속될 전망이다.

1987년 하반기 4천여건에 이르는 노사분규의 홍수 속에서 당시 노동 관련 학자들 간의 가장 큰 화두는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언제 선진화되고 안정화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일본이 30년, 구미 선진국이 50여년이 걸려 나름대로의 노사관계의 틀을 갖춘 것을 고려 할 때 우리나라는 길게는 20년, 짧으면 10년이면 한국적 노사관계를 정립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87년 민주화되고 노동운동이 활성화된 지 10년이 넘고 5년 더 있으면 20년이 되지만 우리 나라의 노사관계는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어 국가경쟁력의 가장 큰 장애요인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03년 세계 경쟁력 연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일반적 노사관계는 생산적(productive)이기보다 매우 적대적(hostile)이며 노사경쟁력 지수는 3.5로 인구 2천만명 이상 30개 국가 중 꼴찌인 반면 세계 시장에서 경쟁 상대국인 일본의 지수는 7.6으로 1위, 말레이시아는 7.3으로 2위, 대만은 7.2로 3위다.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된 지 40여년, 노동운동이 제 목소리를 낸 지 10년이 훨씬 넘었지만 우리나라의 노사관계가 근본적인 안정화를 이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투명하지 못한 기업경영, 기업별 교섭구조 아래 거시적 국가이익을 고려하지 않는 노동운동, 법과 원칙이 흔들리는 정부의 노동정책 등 여러 요인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노사관계를 중장기적이고 근원적으로 풀기보다 단기적이고 대증요법적으로 접근하려는 우리 사회의 갈등해결 방식과 이에 편승한 정부의 무원칙한 노사분규에 대한 개입이 우리나라의 노사관계가 여전히 갈등과 대립이 지속되고 있는 근본원인이다.

특히 친노동자적 노동정책 노선을 가지고 있는 참여정부 들어서는 정부가 불법적인 파업이라도 노조와 적극적으로 대화와 협상에 나서면서 노사관계의 법과 질서가 더욱 흐트러졌다.

물류대란을 이유로 정부는 노조로서의 법적 지위도 인정받지 못하는 화물연대와 협상을 했고, 전산망 다운을 우려해 정부는 조흥은행 노조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함께 단기적인 피해와 불편을 참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조급증이 참여정부뿐만 아니라 역대 정권에서도 정부가 개별적인 노사분규에 무원칙하게 개입하는 하나의 단초를 제공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이번 철도파업에 대해 기존의 대응방식에서 탈피하여 법과 원칙에 충실한 노사관계의 질서를 확립하고 불법파업에 대해서는 용인하지 않을 방침을 거듭 밝혔고, 이와 같은 정부의 정책변화가 이번 사태의 조기 종식에 일조를 했다. 참여정부가 그간의 학습과정을 거쳐 노사관계에 있어 정부가 해야 할 본연의 역할로 복귀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부는 노사관계의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면서 산업현장에서 법과 질서가 지켜지도록 해야 하며 개별적인 노사분규에 대해 무분별하게 개입하는 것은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 사회, 그리고 국민 개개인도 정부가 이와 같은 원칙을 지켜갈 수 있도록 당장의 불편이나 단기적인 피해는 감수하려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朴英凡(한성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