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학대로 기소유예 계모, 다시 때려 숨지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알코올의존증이 있는 장모(41)씨는 지난 연말 또다시 법정(수원지법 안산지원)에 섰다. 아홉 살 아들에게 욕설을 하면서 수십 회에 걸쳐 차렷과 원산폭격 자세를 반복시킨 혐의로 기소돼서다. 아동학대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지 3개월 만이었다.

아동학대 1만 건 중 실형은 21명
풀려난 부모 친권 행사 못 막아
가정·형사법원 칸막이 없애야

자주 술에 취해 아내와 두 아들을 폭행했던 장씨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자마자 다시 학대행위를 했다. 그러나 장씨는 집행유예 기간에 동일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징역 2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풀려나 두 아들 앞으로 돌아왔다.

아동학대는 상습적으로 은밀하게 이뤄져 적발이 쉽지 않은데 가해자를 처벌해도 곧 석방돼 피해 아동 곁으로 돌아가는 게 큰 문제로 지적된다.

2014년 9월 도입된 아동학대처벌법에 따라 검사나 경찰관·아동보호전문기관장 등은 판사에게 친권정지 등 피해아동보호를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전국 법원에 접수되는 피해아동보호청구는 월 20~30건가량이다. 아동학대처벌법 도입 이후 지난해 말까지 접수된 총 피해아동보호사건은 415건에 그쳤다. 친권(親權·자녀 보호와 양육, 재산 관리 등과 관련한 부모의 권리와 의무) 제한 필요성을 1차적으로 판단하는 경찰과 검찰에 아동보호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 2014년 발생한 1만 건의 아동학대 사건과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사람은 129명에 불과했다. 이 중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21명(약 16%)이 전부다. 나머지는 집행유예(25명)·벌금(27명) 등으로 풀려났다.

수사 과정에서 피해아동이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맡겨져도 풀려난 부모가 친권을 행사하면 아이 인도를 거부할 방법이 없다. 그 결과 아이의 죽음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2004년 1월 경기도 군포에선 계모 G씨가 딸(7세)을 빗자루와 발로 무차별 폭행해 숨지게 했다. 아이를 때려 긴급체포됐다가 기소유예로 풀려난 지 3개월 만의 일이었다.

법원 내 칸막이도 문제다. 형사재판을 맡은 판사는 재판 과정에서 피해아동의 심각한 상태를 알게 돼도 특별히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 형사재판 담당 판사에겐 피해아동보호에 개입할 권한도 의무도 없어서다. 칸막이는 아동보호사건을 다루는 가정법원 내에도 있다.

아동학대의 피해자는 소년보호사건, 이혼 등 일반 가사사건 처리 과정에서도 발견되지만 보호조치를 내릴지는 판사의 ‘선의’에 달렸다. 아동보호 전담 판사가 다른 사건에 어떤 피해자들이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인천지법 소년부 문선주 판사는 “각종 보호사건과 가사사건을 통합 관리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변호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