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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박물관에 누드상이 보이지 않는 까닭…이란 자본의 힘?

중앙일보

입력

이란 정상으로선 17년 만에 유럽을 순방 중인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에 대한 유럽의 환대가 남다르다. 이란이 미국 등 서방이 동결했던 1000억 달러(122조원)의 금융 자산을 활용할 수 있게 돼 주머니가 두둑한데다, 25일부터 닷새간 방문국인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수십조 원을 쓸 것으로 알려져서다. 유럽으로선 신경을 쓰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는 전주(錢主)다.

25일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에서의 양국 정상 기자회견장에서부터 배려가 드러났다. 로마제국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말을 탄 모습의 조각상이 위풍당당하긴 했으나 한쪽으로 비켜서 있었다. 대개 말의 모습도 드러나도록 회견장이 배치되곤 하나 이번엔 아우렐리우스도 말도 정면을 주시하게 했고 기자회견하는 곳으로부터도 떨어지게 했다.

이 때문에 카메라 앵글엔 기마상이 포함되지 않았다. 영국의 더타임스는 “말의 생식기가 보일 수 있으니 기마상 가까이에 서선 곤란하다는 이란 측의 우려가 있었다”고 전했다.

기마상은 그나마 나은 처지였다. 다른 누드 조각상은 흰 패널로 가려졌다. 갓 목욕을 하고 나온 모습의 비너스, 사랑의 신인 큐피드가 연인 프시케와 끌어안고 있는 모습의 ‘프시케와 큐피드’, 그리고 백조의 모습을 한 제우스를 안고 있는 스파르타의 여왕 레다의 ‘레다와 백조’ 등이다.

이탈리아 언론들은 “이란 문화와 감성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기 위한 조치”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경제적 이해를 위해 이탈리아 역사와 문화를 배신한 것”이란 여론의 역풍도 거세다. 소셜 미디어인 트위터(‘#statuenude’·누드상)에선 유명 누드 조각상 사진을 공유하는 열풍이 불었다.

이탈리아의 배려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이날 만찬엔 와인이 곁들여지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로하니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 논의 과정에서 이란이 “오찬에 와인이 제공돼선 안 된다”고 했으나 프랑스가 거절, 결국 오찬 일정이 취소됐던 일화를 염두에 둔 듯하다. 파리 테러로 로하니 대통령의 방문 일정이 연기됐지만 말이다.

로하니 대통령도 이에 화답하듯, 이탈리아 기업들과 총 170억 유로(약 22조1000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27일부터 방문하는 프랑스에서도 유럽 항공기 제조업체인 에어버스와 항공기 114대 구매 계약을 체결한다. 200억 달러(23조8800억 원)를 넘는 규모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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