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경찰과 선관위 손 놓은 사이 서명 자료 폐기

중앙일보

입력

 
박종훈 경남교육감에 대한 주민소환 허위서명 사건수사에서 핵심 증거가 될 자료가 폐기되는 일이 발생했다. 사건 발생 한 달이 넘도록 사건 실체를 규명하지 못한 가운데 이런 일이 발생해 경찰의 ‘수사의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5일 창원서부경찰서와 경남도선거관리위원회 등에 따르면 지난 21일 박종훈 교육감 주민소환 추진본부(이하 추진본부)는 경남도민 51만4000명의 서명이 담긴 서명부를 파기했다. 이는 다른 서명도 허위였는지 확인할 수 있는 핵심 자료였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22일 창원시 의창구 북면의 한 사무실에서 A씨(52·여) 등 5명이 B씨(52)의 지시를 받아 경남도민의 이름·주소 등 2만4000명의 개인정보가 담긴 출처를 알 수 없는 주소록을 이용해 박 교육감 주민소환 서명부에 가짜 서명을 한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당시 현장에서 2500여 명의 허위서명이 적힌 600여 개 서명부를 압수한 바 있다.

추진본부는 배종천 공동대표는 “경찰이 요구하면 언제든지 서명부를 제출하려고 준비중이었는데, 도 선관위가 서명부를 파기하든 경찰에 넘기든 알아서 하라고 했다”며 “경찰도 이를 요구하지 않아 파기했다”고 말했다.

이를 놓고 경찰은 도 선관위에 책임을 떠넘겼다. 경찰 관계자는 “1차적으로 고발된 허위서명 작성에만 수사를 진행해 전체 서명부를 증거로 잡지 않았다”며 “사건을 의뢰한 도 선관위도 증거물 요청이 없었다”고 말했다. 반면 도 선관위 관계자는 ‘법적 근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증거물은 법 위반 혐의가 있어야 수거할 수 있으나 기존 서명부가 불법인지 여부를 판단할 근거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경남교육감 주민소환 불법·허위조작서명 진상규명위원회 김영만 공동대표는 “이렇게 중요한 수사 자료에 경찰과 선관위가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폐기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지난 7일 서명부 허위조작에 가담한 6명의 출국금지와 자택 등의 압수수색을, 22일에는 허위서명 작업이 이뤄진 사무실의 공동소유주인 박치근 경남FC 대표이사와 직원의 자택·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등을 했다. 그 결과 홍 지사의 측근인 박 대표와 또 다른 측근이 사장인 경남도산하 경남개발공사 직원 22명이 서명을 받는 수임인으로 등록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B씨 등 4명은 홍 지사의 선거를 도운 대호산악회 간부 또는 회원으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압수 증거물 분석이 마무리되는 대로 박 대표이사 등의 소환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이 이번 사건의 실체인 ‘윗선의 존재 여부’나 ‘개인정보의 출처’ 등을 밝힐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수사 한 달이 되도록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김영만 대표는 “경찰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늑장수사를 하고 도 선관위도 대응을 잘못하면서 곳곳에서 증거인멸 우려가 커지고 있다”면서 “결국 수사가 흐지부지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위성욱 기자w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