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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칼럼]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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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아직도 미국의 양대 정당이 똑같다고 하는 평론가들이 꽤 있다. 똑같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이익집단과 광적인 당파주의자들에 의해 똑같이 극단적인 입장으로 치닫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건 넌센스다. 가족계획연맹(Planned Parenthood: 낙태 지원)은 코크 형제(Koch brothers: 공화당 지원 억만장자)와 다르고, 버니 샌더스(사회주의자 민주당 대선후보)는 테드 크루즈(공격적인 언행의 공화당 대선후보)의 윤리적 동격이 아니다. 그리고 민주당엔 절대 도널드 트럼프 같은 사람이 없다.

더욱이 자칭 ‘중도’라는 평론가들은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정책을 구체적으로 얘기할 때, 그들이 말하는 게 사실 버락 오바마라는 사람의 입장과 똑같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야 한다.

그럼에도 양대 정당에 공히 흐르는 어떤 정치적인 흐름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침묵하는 다수에게 극단적인 정책을 지지하거나 지지하도록 설득할 수 있다는 끈질긴 망상이다.

우파 중에선 강경 보수 진영에서 이런 경향을 볼 수 있다. 그들은 겁쟁이 공화당 지도부가 이전 몇 세대에 걸쳐 입법된 진보 정책들을 되돌리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사교클럽에 드나드는 고상한 공화당원 사이에서도 이런 류의 경향이 감지된다. 경선 투표장에 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유권자의 3분의 2 가까이가 트럼프, 크루즈, 벤 카슨을 지지하고 있는데도 자기네가 공화당의 주류라는 망상에 젖어있다.

한편 좌파에는 충분히 고결한 지도자만 나온다면 미국의 천사같은 습성을 끄집어내 국민들이 급진적인 개혁을 지지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 이상주의 그룹이 있다. 2008년에 그들은 오바마를 지지했고 지금은 샌더스를 지지한다. 샌더스는 너무나 순수한 입장을 취한 나머지 최근 가족계획연맹(힐러리 지지 표명)조차 기득권의 일부로 치부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깨달은 것처럼 변혁의 언어가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오바마가 실패했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역사에 기록될 큰 업적을 남긴 대통령이다. 린든 존슨 대통령 이후 어떤 대통령보다 진보 어젠다를 많이 집행했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과정 하나하나마다 ‘절반을 얻는 게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는 것보다 낫다’는 점에 의존했다. 건강보험 개혁은 가입률을 높였지만 건보 시스템을 민간의료사업자에 맡겨놨고, 금융개혁은 월가의 권력남용을 막았지만 그 권력의 근원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부자 증세는 실천했지만 소득 불평등 해결에 정면으로 나서지 않았다.

민주당원들 사이에선 누가 오바마의 적자(適子)인지에 대해 작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샌더스? 힐러리? 정답은 분명하다. 샌더스는 오바마 ‘후보’의 후계자이고, 힐러리는 오바마 ‘대통령’의 후계자다. (돌이켜보면 건보개혁 원안은 오바마가 아니라 예전에 힐러리가 만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더 큰 변혁의 리더가 될 수 있었을까. 부분적으로 뭔가를 더 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금융위기로 전임자가 완전히 신뢰를 잃은 우호적인 정치 환경에서 당선됐는데도 취임 당일부터 정적들의 반대로 초토화됐다.

샌더스 지지자들이 스스로 물어야 할 질문은, 언제 그들의 변혁 논리가 실현된 적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대공황의 와중에 큰 과반으로 당선된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조차 현실과 타협해야 했다. 이익집단 뿐 아니라 남부의 인종차별주의자들과도 함께 일해야 했다.

루즈벨트가 도입한 진보적 제도들은 기존 것에 더한 것이지 대체한 것이 아니란 점도 기억해야 한다. 소셜시큐리티(미국 공적연금)는 민간 연금을 대체하지 않았다. 민간 건강보험을 정부 지원으로 대체하자는 샌더스 주장과는 다르다. 그리고 참, 소셜시큐리티는 원래 노동자의 절반에게만 혜택을 줬다. 흑인들은 대부분 소외됐다.

이건 분명히 해두고 싶다. 나는 샌더스 같은 사람이 당선 가능성이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공화당 전략통들은 당연히 힐러리보다 샌더스를 상대하길 원하겠지만 말이다. 그들은 샌더스가 그들의 융단 폭격을 아직 맞지 않았기 때문에 샌더스의 현재 지지율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샌더스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결국 오바마 대통령처럼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상주의가 좋고 필요하지만 목표를 이뤄낼 수 있는 수단에 대한 냉철한 현실감각 없이는 미덕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루즈벨트처럼 압도적인 지지 속에 꽃가마를 타고 백악관에 입성해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앞으로 10년 안에 상ㆍ하원 어느 한 쪽에서라도 과반 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낮은 요즘 민주당 대선 후보는 더 그렇다.

미안하지만 목표와 수단에 대한 냉철한 고민 대신 행복한 상상을 선호해서 당신의 가치가 패배하게 되는 것은 거룩한 일이 아니다. 이상주의가 재앙적인 방종으로 흐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폴 크루그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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