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뒷거래 대상이 된 이재명의 청년상품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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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재명 성남시장의 청년상품권이 지급되자마자 ‘선심성 현금살포’ 논란을 만들었다. 상품권을 나눠준 지 하루 만에 인터넷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에 액면가의 70~80% 가격에 팔거나 사겠다는 글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취업 역량 강화가 상품권 지급의 명분이다. 책을 사거나 학원비 등 자기 계발에 활용하란 게 취지다. 하지만 ‘깡’으로 불리는 뒷거래 대상에 오른 것이다.

 성남시는 20일 청년배당 정책에 따라 3년 이상 거주 중인 24세의 남녀 전원에게 ‘성남사랑상품권’을 배포했다. 청년배당은 1인당 연간 50만원인데 이번 상품권은 1분기 몫 12만5000원이다.

성남시 예산을 무차별 살포한다는 비난을 의식해 성남시 관내서만 쓸 수 있는 지역 화폐로 지급했다. 하지만 상품권을 받은 청년들은 할인을 감수하고 현금화에 나섰다. 상품권 판 돈을 성남시 전통시장에서 쓰겠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은 대략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지만 소외받는 이웃도 많다. 이들을 위한 복지를 늘려나가는 건 옳은 방향이다. 특히 청년들의 취업 절망감은 국가적 근심 거리가 된 지 오래다. 청년 10명 중 4명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의 줄임말)을 떠올린다는 조사가 나오는 상황이다. 지자체가 이들의 좌절감에 관심을 갖고 정책을 개발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런 의도를 높이 평가해 성남시의 청년배당을 새로운 복지 실험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앙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음지 속의 복지’란 주장이다.

 그렇다 해도 취업 역량을 높인다면서 직업이 있든 없든, 부자든 가난하든 고려하지 않고 24세의 남녀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세금을 나눠준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성남시의 다른 나이 청년이나 다른 지역 같은 나이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고려해야 한다. 취업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적정한 액수인지도 모르겠고 지속 가능한 정책인지도 의문이다. 더욱이 복지 재원이란 게 어차피 한정돼 있다. 이런 식의 보편적 복지가 상대적으로 도움이 절실한 다른 이웃에게 절망이 된다는 현실론도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은 총선이 코앞이다. 이재명 시장은 더불어민주당에 소속된 정당인이다. 이 시장의 의도와 관계 없이 표를 의식한 선심 정책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충분하다. 상품권의 현금화를 막기 위해 2분기부터 전자카드로 지급하겠다고 둘러갈 일이 아니다. 청년배당 정책은 당장 폐기하는 게 정답이다.

취업 역량을 높이려는 지원책은 중앙 정부에도 있다. 이 시장이 취업을 못해 궁지에 몰린 청년을 정말 돕겠다면 성남시만의 실질적 취업 지원책을 개발하는 게 옳은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