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 겪은 중국 축구…리우올림픽 남자축구 최종예선 탈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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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적인 투자로 주목 받는 중국 축구가 굴기(?起·우뚝 섬) 대신 굴욕(屈辱)을 겪었다. 2016 리우올림픽 남자축구 최종예선에서 졸전 끝에 일찌감치 탈락해 자존심을 구겼다.

중국은 19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이란과의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 챔피언십 겸 리우올림픽 남자축구 최종예선 A조 최종전에서 2-3으로 졌다. 앞서 카타르와 시리아에 각각 1-3으로 진 데 이어 이날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서 조별리그 3전전패를 기록했다.

중국 축구는 올림픽 무대에서 맥을 못추고 있다. '23세 이하'로 출전 자격이 정해진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이후 지난 2008년 베이징 대회에 개최국으로 출전한 것을 제외하고는 단 한 차례도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1992년 이전도 마찬가지다. 1936년(베를린)과 1948년(런던)에 이어 1988년(서울)에 본선 무대를 밟은 게 전부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도전 상황도 암울하다. 한 수 아래로 여긴 홍콩과의 홈&어웨이 맞대결에서 모두 비긴 것을 비롯해 아시아 2차예선 C조에서 3승2무1패, 승점 11점으로 카타르(18점), 홍콩(14점)에 이어 조 3위에 머물러 있다. 프랑스 출신 사령탑 알랭 페렝(60) 감독을 전격 경질하며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남은 두 경기에서 뒤집기에 성공할 지는 미지수다.

수퍼리그(중국 프로 1부리그)에 연간 1000억원 이상 쓰는 팀이 7~8개나 되고, 시진핑 국가주석이 '축구 굴기'를 부르짖는 중국이 각종 국가대항전에서 맥을 못 추는 가장 큰 이유는 '저변 부족'이다. 중국축구협회가 지난해 발표한 등록선수 수(아마추어 포함)는 71만명으로 전체 인구(12억명) 대비 0.059%에 불과하다. 일본(480만명)은 물론 우리나라(109만명)에도 못 미친다. 저변 확보의 중요성을 깨달은 중국축구협회는 2025년까지 등록 선수를 5억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경험도 모자란다. 광저우 헝다가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는 등 클럽대항전에선 중국팀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주인공은 유럽과 남미에서 거액의 몸값을 받고 이적한 외국인 선수들이다. 대부분의 중국 클럽들이 핵심 포지션을 외국인 선수에게 맡기다보니 자국 선수들이 경험을 쌓을 기회가 부족하다. 월드컵과 올림픽 등 메이저급 대회의 본선 무대를 경험한 선수와 스태프가 거의 없어 자신감도 떨어진다.

프로 의식 결여를 지적하는 분석도 있다. 지금은 사라진 산아제한 정책(1가구 1자녀) 아래 가정에서 '소황제'로 성장한 선수가 대부분이라 그라운드에서도 궂은 일을 기피하는 풍조가 자리잡았다.

중국 축구 사정에 능통한 한 에이전트는 "중국 축구의 인기가 대표팀에서 클럽으로 옮겨가면서 일부 구단은 대표팀에 차출된 선수들에게 '부상 당하지 않게 살살 뛰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력에 비해 몸값이 터무니 없이 높은 수퍼리그의 왜곡된 연봉 구조 탓에 잠재력 있는 선수들이 좀처럼 해외로 나가지 않는 것도 실력 정체의 원인이다.

이장수(60) 전 광저우 헝다 감독은 "중국이 미래를 내다보고 전략적으로 키우기 시작한 1세대 선수들은 아직 10대 초·중반이다. 이 선수들이 20대에 접어드는 5~6년 뒤에야 중국 축구가 새로운 면모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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