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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게 끊겨 있는 한·중 핫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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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수 기자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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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수
정치국제부문 기자

2015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오후 4시. 국방부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오전 11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장관실에서 중국 베이징의 창완취안(常萬全) 중국 국방부장(장관)과 전화통화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한·중 국방장관 간 핫라인(직통전화)이 개통됐다고 했다.

 국방부는 “한·중 수교 23주년이 되는 금년도 마지막 날에 직통전화 개통으로 그 대미를 장식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는 한 장관의 발언과, “핫라인 개통은 기념비적인 것”이라는 창 부장의 발언도 공개했다. 특히 한 장관은 “양국 국방 당국 간 상호 신뢰와 협력으로 이룬 의미 있는 성과”라고도 했다.

 하지만 1월 11일 중국의 창 부장이 ‘기념비적인 것’이라고 했다는 한·중 핫라인은 말 그대로 먹통이다. 끊긴 건 아니다. 다만 한국이 전화기를 들어도 중국 측에서 응답이 없으니 먹통이란 얘기다.

 북한이 수소폭탄을 실험했다고 공개적으로 발표(6일)한 지 닷새가 됐지만 한·중 국방장관의 핫라인은 감감무소식이다. 국방부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민구) 장관이 지난번(7일)에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중국과 전화통화를 하기 위해) 실무 협의 중’이라고 했다. 현재 중국 국방부는 다른 어떤 나라와도 통화를, 전화통화를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도 일단 요청은 한 상태이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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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12월 31일 들뜬 모습으로 보도자료를 내고, 한·중 핫라인의 의미와 성과를 구구절절 설명하던 것과는 딴판이다. 국방부는 당시 보도자료에서 핫라인이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형성된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한 공통 인식을 토대로, 상호 이해와 신뢰를 증진하고 고위급 간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기제로 적극 활용해 나갈 계획’이라고도 적었다. 한반도의 위기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고, 위기가 발생했을 땐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해졌다는 설명도 했다.

 핫라인은 1963년 8월 미국 백악관과 러시아의 크렘린궁 사이에 사고나 오해로 인한 우발적인 전쟁을 막기 위해 개통한 게 기원이다. 그야말로 긴급 비상용 전화다. 하지만 한·중 간 핫라인은 한반도에 ‘뜨거운 상황’이 발생한 2016년 1월 잠자고 있다. 동북아의 평화와 한반도 안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핫라인은 중국의 외면으로 차갑게 식어 있다. 중국을 동맹국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방으로 분류할 만큼 박근혜 정부의 대중 외교는 지금까지 유별났다. 문제는 그 유별이 북한의 4차 핵실험 상황에서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더 한심한 건 이 국면에 국방부 고위 당국자라는 사람들이 하는 변명이다. “BH(Blue House의 약어, 청와대)에서 풀어야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정용수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