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짧은 호흡에 담은 섬광같은 상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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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소설 '개미''뇌' 등이 국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프랑스의 인기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42.사진)의 새 소설집 '나무'(열린책들)가 출간됐다.

프랑스 현지에서 지난해 10월 출간된 '나무'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공쿠르상 수상작인 파스칼 키냐르의 '방황하는 그림자들'을 따돌리고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대중적인 인기를 재확인했다.

소설집은 9쪽에 불과한 '사람을 찾습니다' 등 10~20쪽 분량의 짧은 단편 18편을 모았다. 다른 행성 과학자 눈에 비친 '야생인간'의 관습을 다룬 '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 유전자 조작을 거쳐 애완용으로 거듭난 사자들을 줄에 매어 끌고 다니는 상황을 설정한 '그 주인에 그 사자' 등 단편들의 빛깔은 다채롭다. 이전 장편들에 비해 호흡은 짧아진 반면 소설 속의 세계는 더 다양하고 기발하다.

베르베르는 머리말에서 "인간과 다른 존재의 시선을 빌려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언제나 유익하고 흥미로운 일이며, 인간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의 마르지 않는 원천"이라고 밝혔다. 소설 '개미'가 지극히 낮은 관점에서 인간을 관찰한 결과물이라면 소설 '천사들의 제국'은 천상에서 내려다 본 인간의 모습을 담았다는 것이다.

'나무'도 인간 중심에서 벗어나 외래적 시선으로 인류를 비춰보는 작업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예컨대 단편 '투명피부'는 생체를 투명하게 만드는 유전적인 방법에 천착하던 한 과학자가 마침내 살갗과 근육이 투명해져 혈관과 내장, 뼈가 들여다보이는 비법을 개발하게 되고, 결국 스스로를 최종적인 실험대상으로 삼아 투명인간이 된 후 겪는 이야기를 다뤘다.

작품의 묘미는 역시 멀찍이 떨어진 거리에서 바라 본 인간에 대한 통찰에서 나온다. 외투와 선글라스로 투명한 피부를 감추고 잠적하던 중 칼을 휘두르는 불량배를 만난 투명인간은 투명한, 그래서 징그러운 몸을 드러내 불량배를 물리친다. 그러나 정작 구경꾼들은 정신적 충격을 받고 쓰러진 불량배를 돌볼 뿐 습격의 피해자인 투명인간에게는 오히려 공격성을 드러낸다.

세상은 폭력에는 익숙하지만 '다른 것'은 참지 못하는 것이다. 투명인간의 깨달음은 '몸과 같은 개인적인 요소와 관계된 진실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사람들은 몸을 하나의 기계장치처럼 여길 뿐 몸에 대해 진정으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데까지 나간다.

프랑스어 원본에는 없는, 한국어판에만 실린 원색삽화 28점은 소설 속 공상과학적인 세계의 이해를 돕는다. 출판사는 상페와 뫼비우스, 두 삽화가를 두고 저울질하다 과학과 환상이라는 테마에 익숙한 뫼비우스에게 삽화를 맡기는 계약을 하고 아시아 지역에서 그림 판권을 갖기로 했다.

전 세계 30여개 언어로 번역돼 1천5백만부가 팔린 베르베르의 소설 책들은 한국에서만 2백50만부가 넘게 팔렸다. 한국시장은 프랑스를 빼면 가장 반응이 좋은 시장이다.

소설 속에 한국인 캐릭터를 등장시켜 한국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호응해 온 베르베르는 '투명피부'에서도 한국 여인을 등장시켜 주인공과 로맨틱한 장면을 연출한다. '나무'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궁금하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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