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의 反 금병매] (8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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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서문경의 비명을 듣는 순간, 금련도 온몸에 소름이 확 돋았다. 감고 있는 두 눈을 뜨고 고개를 뒤로 돌려 침상을 바라보려 하였으나 목이 돌아가지 않았다. 어느새 서문경의 옥경은 힘을 잃고 쪼그라져 금련의 계곡 아래로 미끌어져 있었다.

"누, 누가 있다는 거예요?"

금련이 겨우 숨을 가다듬으며 서문경을 향해 물었다.

"무, 무, 무대랑이 부인 뒤에 누워 있소."

서문경의 얼굴은 이미 퍼렇게 질려 있었다. 금련이 고개를 돌려 침상을 바라보기도 전에 서문경은 후다닥 몸을 빼어 옷을 걸치는 둥 마는 둥 하고 허겁지겁 방을 달려나갔다.

방에 혼자 남은 금련은 그만 공포에 눌려 꼼짝을 할 수 없었다. 정말 서문경이 말한 대로 무대 귀신이 지금 자기 뒤 침상에 누워 있는 것인가. 금련의 눈앞에 얼굴의 일곱 구멍으로 피를 흘리며 까맣게 죽어가던 남편의 모습이 선하게 떠올랐다.

금련은 온몸이 굳어진 채 마치 자기 뒤에 무대가 있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여보, 정말 지금 내 뒤에 누워 있는 거요? 너무 억울하고 분하여 이렇게 찾아와 훼방을 하는 거요? 아무리 그래도 이곳은 귀신이 있을 수 없는 이생이오. 빨리 저승으로 돌아가시오."

금련이 이 말을 뱉고는 용기를 내어 홱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침상은 텅 비어 있을 뿐이었다. 서문경이 잘못 보았든지, 무대 귀신이 금련의 말을 듣고 저승으로 돌아갔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었다.

금련이 천천히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세웠다. 등판을 타고 식은 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남편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집에서 정사를 벌이려고 한 것이 아무래도 잘못인 것 같았다.

그런데 서문대인 이 양반은 지금 어디로 달아난 것인가. 허우대는 멀쩡하면서도 겁이 많은 서문경이 은근히 원망스럽기도 했다. 무대 귀신이 붙었다 하여 서문경이 자기를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자 금련은 덜컥 심장이 멎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서문경이 지어준 비상으로 남편을 죽인 것인데 서문경이 금련 자기를 버렸다가는 함께 망하고 말 것이 뻔하지 않은가. 그러나 다음 순간, 서문경이 금련을 버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아예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도록 할 것이라는 생각이 파고들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서문경이 금련을 버리기 전에 금련이 먼저 손을 써야 생명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었다. 손을 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굳이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금련은 머리를 세게 한 번 흔들었다. 이런 모든 생각들이 쓸데없는 잡념인지도 몰랐다. 서문경이 신경이 날카로워 잠시 곡두를 본 것에 불과하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 분명하였다.

이런 때일수록 금련 자신이 서문경을 좀 더 알뜰하고 다정하게 대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이번에는 서문경이 다시금 몹시 보고 싶어졌다. 정말이지 쾌락을 탐하다 보면 죽고 사는 것은 상관하지 않게 되는지도 몰랐다. '탐환불관생화사(貪歡不管生和死)'라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서문경한테서는 아무 소식이 없었다. 금련은 서문경이 정말 무대 귀신에 놀라 아직도 혼비백산한 상태에 있나 싶어 걱정이 되었다. 왕노파를 통해 서문경 소식을 알아보니 그 집안에 누가 아픈지 좋지 않은 일이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누가 아프냐고 다그쳐 물어도 왕노파는 자기도 잘 모르겠다는 대답만 하였다. 그 집안 사람들이 쉬쉬하면서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럴수록 금련은 더욱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문경이 무대 귀신의 해코지로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것이라면 큰일이었다. 귀신으로 인한 병은 쉽게 낫지도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아닌게 아니라 무대 귀신이 해코지를 해서 그런지 금련도 심하게 한기가 들면서 몸져 눕고 말았다. 이러다가는 서문경과 함께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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