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 총장 직선 안돼” 예산 삭감하는 교육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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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부산에서 대학 총장 선출방식을 놓고 벌어진 국립대와 교육부의 갈등이 해를 넘기고 있다. 부산대는 지난해 11월 학칙을 개정해 간선제 대신 직선제로 뽑은 총장후보를 올렸지만 교육부의 임용제청은 한 달 가까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해양대와 부경대 교수회도 부산대에 이어 직선제를 결정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직선제는 부작용이 많아 간선제로 총장을 선출해야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부산대 총장 임용제청 지연
특성화사업 예산 절반 깎아
해양대·부경대도 직선 주장
“자율성 보장해야 갈등 해소”

 올들어 부산의 주요 국립대에서 ‘총장 공백 사태’가 우려되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최근 교육부가 부산대의 지원예산을 삭감하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다른 국립대는 교수 반발을 무릅쓰고 간선제를 고수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총장 선출 방식을 두고 교수회와 대학본부간에 갈등을 겪은 부산대는 지난해 8월 간선제를 반대한 고 고현철 교수의 투신을 계기로 직선제를 결정했다. 같은 해 11월 전호환(58·조선해양공학과), 정윤식(61·통계학과) 교수를 총장 후보자로 선출했다. 국립대 총장은 교육부가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하지만 부산대는 총장 임용 제청을 기다리던 중 정부 산하 한국연구재단으로 부터 ‘예산 삭감’을 통보받았다. 삭감된 예산은 지난해 교육부가 지원키로 한 대학특성화사업(CK) 예산 48억2500만원 중 7억2000만원이다. 22억9700만원을 지원키로 한 학부교육 선도대학 육성사업(ACE) 예산도 11억4850만원으로 깎였다. 간선제를 시행하지 않은데 대한 조치라는 게 부산대의 해석이다. 해당 사업 평가 항목에 총장 선거방식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안홍배 부산대 총장직무대리는 “직선제를 도입하면서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며 “교육부가 신임 총장을 임용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부산대 총장 임용절차를 밟고 있다”는 원칙적인 말만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해양대와 부경대 교수회도 직선제로 총장을 뽑겠다고 선언했다. 한국해양대 교수회는 지난해 9월, 부경대 교수회는 지난달 총회에서 총장 직선제를 의결했다.

 오는 3월 박한일 총장의 임기가 만료되는 한국해양대는 박 총장이 “교육부의 방침을 따라야 한다”며 간선제를 고수하면서 교수회와 대학본부간 논의가 전면 중단됐다. 부산대와 같은 사태가 우려된다.

 김영섭 총장의 임기가 오는 8월까지인 부경대는 한국해양대보다는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다. 하지만 교육부의 ‘입김’을 우려한 대학 측이 직선제를 주장하는 교수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어 여전히 갈등의 불씨가 남아있다. 임영현 부경대 교무과 팀장은 “새 학기가 시작되면 총장 선거 논의가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로선 대내외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연원 부경대 교수회장은 “국립대는 간선과 직선으로 총장을 선출할 수 있다고 현행법에 돼 있지만 교육부가 예산지원을 무기로 총장 선거에 간섭하고 있다”며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갈등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차상은 기자 chazz@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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