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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실현 과정, 한쪽선 눈물 … 지도층은 그런 점 헤아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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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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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반부터 문학과 사회에 대한 평론글을 써 온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사람은 보람·행복감과 함께 우주 전체, 자연의 질서에 비춰 스스로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확신이 있어야 잘 살 수 있다”고 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올해 팔순을 맞은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가 새 전집을 낸다. 200자 원고지로 자그마치 5만5000쪽, 전체 열아홉 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문학·철학·과학 등 폭넓게 사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늘 물어야
학자로서 대작 못 낸 건 아쉬움
판타지 붐, 인간 실존 조명엔 미흡”

『궁핍한 시대의 시인』 등 197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출간된 기존 전집 다섯 권에 전집 이후의 글, 기타 단행본, 대담 원고 등을 보탠다. 1차로 기존 다섯 권에 6권 『보편 이념과 나날의 삶』, 7권 『문학과 그 너머』를 더한 일곱 권이 민음사에서 지난해 말 출간됐다. 완간은 내년 상반기로 잡혀 있다.

 그를 시대의 대표적인 인문학자, 석학, 지성으로 꼽는 이유는 단순히 전집의 물리적 압도감 때문이 아니다. 이름(우창)의 어감과 비슷하게, 그의 텍스트는 ‘울창’한 숲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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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전집 1∼7권. [사진 민음사]

문학과 철학, 자연과학 등에 폭넓게 걸쳐 있는 데다 대상의 세부와 전체, 과거와 현재를 치열하게 살핀다. 그 안에서 길 잃고 헤매다 마주치는 진실은, 인간의 삶과 세상은 결코 한 줄 설명으로 해명되지 않는 복잡하면서도 신비로운 존재라는 것이다. 지난 4일 인터뷰도 세상살이의 복잡함에 대한 얘기로 시작했다.

 김 교수는 80년대 중반 학생운동 하다 경찰에 붙잡힌 제자들을 찾아가 위로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마침 당시 제자와 이날 사진을 찍은 사진기자가 이름이 비슷해 과거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뭐라고 위로했냐고 묻자 “경찰이라고 당시 정부에 큰 투자를 한 사람들이겠냐. 먹고살기 위해 못되게 구는 것 아니겠나.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한 거고, 너는 너대로 네 일을 한 거다, 라고 얘기해 줬다”고 했다. 학생과 경찰, 아군과 적군이라는 획일적 재단을 벗어나는 복잡한 사정이 삶에는 있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최근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란도 그런 시각에서 설명했다. 실제로 일본 병사와 한국 위안부 간에 사랑이 싹 튼 경우도 있을 수 있고, 그만큼 사람살이는 복잡하다는 것, 다만 박 교수가 그럼에도 공적 책임이 일본 정부에 있음을 강조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 여태까지의 작업이 개인적 삶을 다루는 문학의 공적인 의미를 밝히려는 것 아니었나.
“문학을 포함한 인문학의 교훈은 복잡하게 생각해야 하는 대목에서 너무 단순하게 결론 내리면 인간 현실을 잘못 파악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정의(正義)라는 가치도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가령 정의 실현 과정에서 한쪽에서는 눈물 흘리는 사람이 발생할 수 있다. 정치인이나 정책 결정자들은 그런 점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 정치인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가 갈수록 사라지는 것 같다.
“그런 흐름을 막을 뾰족한 방법은 사실 없다. 한 강연에서 어떤 여자분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느냐’고 묻길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계속해서 물어보며 살도록 가르치라고 말해줬다. 사람은 도덕적 윤리적 반성이 있어야 보람 있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모든 정치적 이념에는 도덕적 차원이 있게 마련이다. 이건 신 같은 절대자로부터 주어진 게 아니다. 인류가 오랜 생활 경험에서 터득한 거다.”
- 지금까지 쓴 글 중 특별히 애착이 가는 게 있다면 꼽아달라.
“없다. 학자로서 대작을 내지 못해 아쉽다. 대작을 내지 못한 이유는 결국 내가 저널리스트였기 때문이다. 연구만 하기에는 한국사회가 너무 문제가 많은 사회였다. 그때그때 글을 써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 한국문학 위기론을 어떻게 보나.
“소설도 일종의 뉴스다. 한데 TV·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 뉴스가 넘쳐나니 소설의 힘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요즘 판타지가 인기인데, 상상력이 문학의 주요 요소이니 잘못이랄 건 없지만 인간 실존에 대한 실감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김 교수는 “신경숙 표절 논란은 실제로 표절했는지 여부보다 작품 자체가 좋은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시인·소설가 후배들에게는 “기존 소설에서 정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인간 삶의 불가사의한 부분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갖는 게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글=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우창=1936년 전남 함평 출생.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하버드에서 미국 문명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계간 문예지 ‘세계의 문학’ 편집위원 을 지냈다. 예술원 회원. 대산문학상·인촌상 등 수상. 2003년 녹조근정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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