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더 과격하게 남녀차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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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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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논설위원

“김행 전 청와대 대변인이 가산점을 20%나 챙기는 게 합리적인가?” 새누리당 공천 룰 논란에서 가장 핫한 사례로 등장한 게 ‘김행 가산점’이다. 여성·장애인·신인에게 10% 가산점을 주자는 룰인데, 김행씨는 여성에다 신인 가산점까지 챙겨 20%를 얻는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전 청와대 대변인으로 쌓은 지명도가 있는데 신인으로 봐야 하느냐는 게 논란거리지만, 그 이면엔 여성 가산점에 대한 불만도 엿보인다.

 이 와중에 현역 여성의원들이 “여성 가산점을 달라”거나 여성 비례의원들이 “지역구 출마는 처음이니 정치신인”이라며 나서자 ‘염치없는 여자들’이라며 씹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이런 주장은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평등주의가 훼손당한 듯한 불편함과 그동안 존재가치를 증명하지 못한 기존 여성정치인에 대한 실망감을 느끼게 한다.

 ‘남녀동수(同數)정치’. 여성계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정치다. 남녀가 동등하게 정치적 의사결정에 이르는 체제다. 이 주장은 그동안엔 실천의지가 있다기엔 목소리가 작았고, 구호에 머무는 정도였다. 하나 올해 20대 총선을 앞두고 예전과는 좀 다른 모습이다. 지난해 12월엔 370개 여성단체가 국회도서관에서 범여성계 결의대회를 열고 ‘지역구 30% 여성공천 의무화’와 ‘비례대표 여성할당제 강화’를 요구했다. 같은 내용의 ‘여성지도자 100인 선언’도 나왔다. 구체적인 방안으론 영국 노동당의 사례가 제시됐다. 사망·탈당으로 공석이 된 지역구와 신설 지역구를 여성으로 채우고, 여성 공천 생색만 내고 험지로 보내 다 떨어뜨리는 게 아니라 당선 가능성이 큰 지역에 여성을 공천하라는 거다.

 이런 움직임이 주요 언론의 주목을 받진 못했지만 총선을 앞두고 여성계가 한목소리를 낸 건 실로 오랜만이다. 그 배경엔 기대를 걸었던 여성대통령이 ‘2017년까지 미래여성인재 10만 명 양성’과 ‘여성장관과 정부위원회 여성위원 비율 대폭 확대’라는 대선 공약도 뭉개고 여성정치가 오히려 퇴행하면서 여성계가 총력으로 나선 측면도 있다. 게다가 지난해 정권교체를 이룬 캐나다에서 남녀동수 내각이 출범한 데 고무되기도 했다. 실제로 국제노동기구의 조사(126개국 대상) 결과 여성국회의원 비율(15.7%)에서 세계 94위인 게 우리 현주소다.

 이렇게 여성 정치참여의 확대는 ‘불평등 방식이 주는 불편함’과 ‘남녀동수의 이상’ 사이에서 갈등을 빚어왔다. 여성의 정치참여를 늘리기 위해선 합리성을 의심받을 만큼 차별적 전략, 예를 들어 남성보다 10~20점을 더 받고 시작하는 것 같은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 이게 갈등의 출발점이다. 남성 입장에서 보면 능력주의와 평등이라는 시대정신을 말살한 역차별의 현장일 수 있다.

 유권자 입장에서도 의아한 점은 있다. 여성 의원들이 남성 정치인과 차별화되는 신선한 정치 변화 가능성을 제시하거나 새 세상을 향해 헌신하는 사례를 본 적이 없다. 파벌 싸움에 엉켜 들고, 기회가 와도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나도 여성 가산점’을 외치는 이악스러움에 그저 기성 정치인 집단의 일원 혹은 장식용으로 비친다. 지금까지 여성 정치인들이 보여준 모습이 실망스러운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번 총선에선 여성 의원을 확 늘리기 위해 더욱 과격한 차별전략을 주문해야 한다. 원래 뿌리 깊은 차별로 구조화된 불평등을 교정하는 데 차별과 불평등 전략은 전 세계가 공통으로 구사해왔다. 또 머릿수가 많아야 발언권도 힘도 세진다. 국회에 여성의 숫자가 확 늘면 그들이 제 목소리를 내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다. 이는 여성의 지위 상승에 대한 욕구 때문이 아니라 대접받는 소수가 아닌 경쟁하는 주체가 되었을 때 대한민국 여성들은 뜻밖의 괴력을 발휘한다는 걸 믿기 때문이다. 지금 남성 주도의 우리 정치 현실이 바람직한가. 더 망칠 수도 없는 작금의 정치 현실을 끌어올릴 대안으로 여성의 괴력에 기대보는 건 어떨지….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