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의원 선출, 스마트폰 살 때 만큼 고민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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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새해 1월, 기업 인사가 한창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이번에 승진할 수 있을까?’, ‘나쁜 평가를 받으면 어쩌지?’ 하는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린다. 평가보상 시스템이 합리적으로 잘 갖춰진 조직은 미래가 밝다. 구성원들이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조직 전체의 이익을 높이려 힘쓸 것이기 때문이다. 평가 시스템에 따라 조직의 운명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사실 국민 누구나 평가를 받으며 살고 있다. 음식점을 하는 자영업자는 날마다 고객에게 평가받는다. 어느 하루 음식이 맛없으면 그날 찾아 온 고객은 다시 방문하지 않는다. 공부하는 학생도 매 분기마다 중간, 기말고사를 치르며 평가받는다. 프로야구 선수들도 매년 평가받는다. 개인 성적과 팀 공헌도에 따라 연봉이 오를 수도 있고,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도 있다. 온 국민이 매일, 매 분기, 매년의 평가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 국민은 이렇듯 매번 평가받고 사는데, 이와는 좀 달라보이는 조직이 있다. 바로 국회다. 정치에서 평가 시스템은 ‘선거’다. 국회의원은 헌법 제46조에 규정된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직무를 수행할 의무’를 선서하고 국회에 들어간다. 하지만, 국익을 위해서 일해 왔는지 여부가 평가 기준은 아닌 듯하다. 특정집단과 지역 또는 소수 이해관계자의 ‘사익’을 위해서 일해 온 의원이라도 그 다음 선거에서 의기양양 다시 당선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익을 위해 일하지 않아도 선거에서 아무런 불이익을 주지 않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처럼 부실한 평가의 근본적 책임은 평가자인 ‘유권자’에게 있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지방공항과 지역축제, 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포퓰리즘 정책, 민생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입법이 난무해도 유권자들은 정치인에게 평가로 그 책임을 묻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국민은 전체 국익에 반하더라도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또는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다며 다시 그 국회의원을 뽑아주기도 한다. 심지어는 후보자가 혈연·지연·학연으로 나와 엮여 있는지, 심지어 나와 악수 한 적이 있는지를 떠올리며 투표하는 경우도 있다.

 유권자들은 정치가 잘못되면 으레 국회의원을 비난한다. ‘모름지기 국회의원은 나라를 위해 헌신해야지’ 라고 쉽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연 이게 가능할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뷰캐넌에서 시작돼 공공정책론의 큰 줄기로 발전한 ‘공공선택(Public Choice) 이론’에 따르면, 법이나 정책을 만드는 정치인이나 정부 관료 역시 국민 개개인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이익에 유리한 방향으로 행동한다고 한다. 종교인, 언론인, 정치인, 기업인 누구나 전체 이익보다 사익을 우선한다. 핵심은 그 사익이 국익과 부합되도록 제대로 된 평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유권자가 국익을 위해 일해 온 정치인 만을 선택하겠다는 신호를 먼저 보내야 그 신호를 보고 국회의원들이 당선이라는 사익 추구를 위해 국익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다.

 실제, 미국 등 선진국의 유권자들은 그동안의 실적을 바탕으로 정치인을 평가한다. 정책 대결 중심의 매니페스토 운동을 통해 유권자들은 선거를 앞두고 정책 정보를 얻고 토론하며 지식을 쌓는 기회를 얻는다. 유권자는 냉정한 평가를 거쳐, 국익을 위해 일했던 정치인에게만 다시 당선의 기회를 준다. 재선을 원하는 정치인은 국익을 위해 일하라는 유권자의 뜻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올해는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총선의 해다. 매일, 매 분기, 매년 평가를 받는 국민과 비교해, 국회는 평가 간격이 길다. 한번 평가를 잘못하면 앞으로의 대한민국 4년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흔히 평가를 받을 때 성과와 능력 중심으로 평가해 달라고 평가자에게 요구한다. 직장인과 프로스포츠 선수가 평가받을 때, 학생과 자영업자가 평가받을 때의 마음을 떠올리며 이제 입장을 바꿔 평가자로서 이번 국회 평가를 제대로 해보자. 누가 나라를 위해 일해 왔는지를 기준으로 투표하는 깨어있는 유권자가 돼 보자. 하다못해 스마트폰을 쇼핑할 때조차 우리는 최저가를 검색하고 기능을 알아보며 싸고 좋은 물건을 구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과연 나는 전자제품 하나를 구입할 때보다 국회의원을 고를 때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적이 있는가.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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