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육관 들어서니 “북한 술 사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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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구호에서 오지 않는다. 남북이 서로를 알아가는 교육이 먼저다. 새해 연휴 마지막 날인 3일 오전 경기도 파주 임진각을 찾은 시민들이 북녘을 바라보고 있다. [오종택 기자]

“북한 술 사세요. 싸게 드릴게요.”

[평화 오디세이 2016] 통일, 교육부터 시작하자 <중>
북한 비판 전시물 많아 … “통일관 아닌 반공관”

 지난해 12월 24일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통일전망대. 관람객으로 북적여야 할 전망대 내부는 썰렁했다. 통일 관련 전시물도 없었다. 대신 상인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찾은 김준태(16)군은 “통일전망대라기보단 북한 술을 파는 상가 같다”고 말했다. 오후 통일전망대엔 20~30명의 관람객이 들어왔지만 실망했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근재(42)·장고희(40)씨 부부는 “통일 전시물은 없고, 왜 북한 술을 파는지 모르겠다. 딸을 데려오지 않길 잘했다”고 했다.

 통일교육관이자 정부가 건립한 제1호 통일관인 통일전망대(재향군인회에서 위탁 운영 중)가 본모습을 잃고 있다. 전망대 1층 입구엔 안내원이 아닌 상인들이 관람객을 맞고 있다. 말린 미역, 오뎅, 옥 슬리퍼 등이 즐비했다. 2층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매대에는 팔팔이술, 오발주 등 북한 술이 가득 진열돼 있었다. 1, 2층을 통틀어 통일과 관련된 안내물은 북한 전망을 찍은 대형 사진에 ‘해금강’ ‘구선봉’ 등의 설명 문구를 적어 놓은 게 다였다.

 통일전망대 측은 “1시간 간격으로 북한 쪽 지형 등을 소개해준다”고 했지만 안내원은 없었다. 통일전망대 관계자는 “원래 있었던 건물을 지난해 5월 철거하고 그 자리에 신축 건물을 지으면서 입주해 있던 상인들이 임시로 들어와 있는 것”이라며 “올해 12월 건물이 신축되면 상인들은 원래 자리로 옮기고 전망대 건물은 다시 통일 관련 전시물로 채울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 대박’이란 구호는 통일 교육 현장에서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 통일부는 1988년 고성 통일전망대를 시작으로 전국 13곳에 통일관을 건립, 운영하고 있다. 지역주민과 청소년에게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통일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통일관 운영 규정(통일부 훈령)에 따르면 지역통일관은 통일부가 지원(전시 물품·장비 지원)을 하고, 지자체는 통일관을 건립하거나 관리 운영(인건비·운영비 부담)하고 있다. 통일관 운영 주체는 현재 통일부(오두산 통일전망대), 지자체(양구·철원·청주), 재향군인회(고성), 지방공사(대전), 자유총연맹(인천·공주·부산·창원·제주), 학교(서울) 등으로 다양하다.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어 충북 청주시가 운영하는 청주통일관(399㎡, 93년 개관)을 찾았다. 하지만 차량 내비게이션으로도 검색이 되지 않았다. 현장에 도착해서야 이유를 알게 됐다. 청주통일관은 놀이공원·동물원 등이 있는 청주랜드사업소(15만6876㎡)로 2007년 통합돼 관리되고 있었다. 청주랜드 관계자는 “연간 33여만 명의 방문객이 청주랜드를 찾지만 통일관 관람객이 몇 명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청주랜드 정문 안내도에도 통일관은 표시돼 있지 않았다. 통일관 내부 상황은 더 심각했다. 영하의 날씨에도 통일관은 제대로 난방조차 하지 않았다.

청주통일관의 가장 큰 문제는 전시물(376개 품목)의 노후화였다. ‘남북 간 경제공동체 구축’ 코너에는 남북 합작 전시물이라는 소개와 함께 생산된 지 15년이나 지난 감자당면(2001년 생산) 등이 놓여 있었다. 북한의 의식주 코너엔 한참 돼 보이는 양은솥, 놋쇠 밥주걱 등이 전시돼 있었다. 벽에 걸린 패널은 먼지 등으로 얼룩이 가득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2013년 7월 ‘박근혜 정부의 대북·통일정책’에 관한 게시물을 추가한 게 마지막 업데이트(교체)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시청각 자료도 유명무실했다. 통일관 안쪽에 놓인 6·25 남침에 관한 동영상 TV는 고장 난 채 방치돼 있었다.

통일부 관계자는 “예산이 녹록지 않다”며 “2014년엔 광주통일관(비용 2억9700만원), 2015년엔 인천·제주통일관(5억7200만원)을 개선했다”며 “내년에 지역 통일관 2개(약 6억원)를 리모델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청주통일관에는 ‘북한의 인권 실태’ ‘북한 핵 관련 주요 일지’ 등 북한을 비판하는 내용이 많이 게시돼 있었다. 입구 쪽엔 ‘통일로 가는 길’이라는 표시와 함께 시청각 감상실이 있었다. 하지만 영상의 내용은 통일보다는 반공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비겁한 평화가 전쟁을 부른다’는 제목의 동영상은 북한의 북방한계선(NLL) 침범, 연평해전 등 북한의 호전성을 비난하는 내용이 주였다. 김소연(34)씨는 “통일관인지 반공관인지 헛갈릴 정도”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이영종 통일전문기자, 최익재·정용수·전수진·유지혜·현일훈·안효성·서재준 기자, 왕웨이 인턴기자, 통일문화연구소 고수석 연구위원, 정영교 연구원, 사진=조문규·김성룡·강정현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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