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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상 첫 광역단체 준예산, 경기도 의원들 제정신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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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새해 경기도와 경기도교육청의 예산이 도의회의 벽에 부닥쳐 사상 초유의 준(準)예산 사태가 빚어졌다. 누리과정(만 3~5세 무상 교육·보육) 예산 1조559억원의 편성을 둘러싸고 여야 도의원들이 난장판 싸움을 벌여 올 예산안이 법정 통과 시한인 지난해 12월 31일을 넘긴 것이다. 경기도는 누리과정 지원 대상이 유치원 19만4000명, 어린이집이 15만6000명이다. 모두 합쳐 35만 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하지만 도의회 여야 의원들의 극단 대립으로 서울·광주·전남처럼 누리과정 예산을 한 푼도 확보하지 못했다. 당장 보육비 결제가 시작될 이달 말부터 보육대란이 큰일이다.

 더 심각한 것은 도의회가 누리과정을 볼모로 본 예산안의 발목을 잡아 준예산으로 운영해야 하는 위기 상황을 맞은 점이다. 전체 예산 규모는 경기도 20조원, 경기도교육청 12조원 등 총 32조원이다. 준예산은 새 회계연도 시작 시점까지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일정 경비를 전년도 기준으로 지출하는 방식이다. 2013년 일부 기초단체가 편성한 적은 있었지만 광역단체 중에선 경기도가 처음이다. 경기도 인구는 1280만 명으로 17개 광역단체 중 1위다. 그런데 당분간 인건비·운영비 등 고정비용만 지출 가능할 뿐 사회복지사 처우 개선이나 방학 중 학교 보수·신설 같은 현안이 중단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여기에는 정치판 흉내만 내며 민생을 내팽개친 야당 도의원들의 책임이 전적으로 크다. 경기도의회는 전체 의원 128명 중 더불어민주당 소속이 75명, 새누리당이 53명이다. 다수당인 더민주는 “어린이집 보육 예산은 정부 책임”이라며 진보 성향인 이재정 교육감이 낸 유치원 예산 5100억원과 쟁점 예산을 ‘0’으로 만들어 본회의 기습 처리를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여야의 몸싸움으로 일부가 다치는 등 불상사가 벌어졌다. 야당 의원들이 국가적 어젠다인 저출산 해소에 재를 뿌린 것도 모자라 시급한 민생마저 외면한 것이다. 여당도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애초부터 누리예산 편성에 적극 목소리를 내지 않다가 야당이 준예산으로 압박하자 ‘반대’라는 명분 쌓기에만 급급했다.

 다급해진 남경필 지사는 어제 강득구 도의회 의장과 긴급 회동했으나 임시회 날짜도 잡지 못했다. 야당과 ‘연정(聯政)’을 펴왔던 남 지사의 위기이기도 하다. 대화와 소통이 시급하다. 남 지사와 강 의장, 이 교육감, 여야 의회대표 등 5자가 즉각 회동해 예산 파국을 막아야 할 것이다. 도의원들도 각성해야 한다. 각종 민생 현안과 젊은 엄마들의 보육 걱정에 눈과 귀를 닫고 여의도 국회처럼 정쟁만 벌이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도의원들 스스로 기형적 예산 운영을 서둘러 바로잡지 않으면 1280만 경기도민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도의회는 즉각 임시회의를 열고 누리과정을 포함한 올 예산을 정상화시키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