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무능의 극치 선거구 획정위, 확 뜯어 고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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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한민국이 나흘째 ‘선거구 없는 나라’ 상태다. 여야가 헌법재판소가 정한 시한인 지난 연말까지 20대 총선 선거구 획정에 합의하지 못해 1일 0시부터 전국 246개 선거구가 법적으로 폐지됐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정의화 국회의장은 중앙선관위 산하 선거구 획정위원회에 “현행 의원정수 300명과 지역구 의석 246석을 기준으로 5일까지 선거구 획정안을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따라 획정위는 2일 회의를 열었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해산했다. 다음 회의 일정조차 잡지 못했다. 이대로 가면 8일 종료될 임시국회 안에 획정위가 획정안을 제출하지 못해 선거구 실종 사태가 장기화될 우려가 커졌다.

 획정위는 지난해 10월에도 총선 6개월 전까지 제출해야 할 선거구 획정안을 마련하지 못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번엔 헌정 사상 초유의 선거구 공백 사태를 막기 위해 긴급 구원투수로 투입됐지만 아무 역할을 하지 못했다. 획정위의 존재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획정위의 무능은 지난해 5월 출범 당시부터 예견됐다. 선관위 출신 위원장 1명을 빼면 여야 추천 위원이 4명씩 동수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위원들은 여야 성향별로 갈려 사사건건 대립한 끝에 어떤 합의도 끌어내지 못했다. 2일 회의에도 위원들은 농어촌 배려 1석을 놓고 논쟁만 거듭했다. 여당 성향은 충청을, 야당 성향은 호남을 고집한 끝에 결렬됐다.

 총선이 석 달여밖에 남지 않았는데 전국의 모든 선거구가 실종된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이로 인해 예비후보들은 자신이 출마할 선거구가 어디인지조차 모르는 참담한 신세가 됐다. 4·13 총선의 정통성이 뿌리째 흔들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야는 국회의장이 중재안을 직권상정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기 전에 서둘러 획정안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획정위가 명실상부한 독립기구로 기능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 여야 추천을 3명씩으로 줄이고 나머지 3명은 선관위에 추천권을 돌려줘 중립적이고 합리적인 타협안을 도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